여야가 모두 '민생'을 내걸며 총선에 임하고 있지만 실제 대다수 서민들은 먹고살기에 바빠 선거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먹고사는 문제와 관해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참신한 공약을 여야가 제시하지 않는 탓도 크다.
이런 참에 새누리당 선대위원장 강봉균 전 의원이 '한국은행 양적 완화'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가계부채 문제와 기업부채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고 그것에 대해 여야가 정치공방을 벌이는 모습은 그나마 정책선거 쟁점이 생겼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한국경제는 현재 사방이 절벽에 가로막혀 있다. 수출은 마이너스로 추락했고 내수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서민가계는 높은 가계부채와 그로 인한 원리금 상환 부담에 짓눌려 있다. 8년째 계속되고 있는 세계 대불황(Great recession)의 태풍 속으로 한국경제가 본격적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형세다. 그리고 대불황 또는 대공황 시기에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급증하며 그 부채 문제의 해결 없이는 대불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과거 세계 역사의 교훈이다.
사내유보금이 너무 많아 문제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자기자본도 충실하다. 하지만 앞으로 대불황이 계속되고 심화될수록 조선과 건설, 해운, 철강 등의 경기불황 업종에서 시작된 대기업 부실은 점차 더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증가할 부실 대기업들을 어떻게, 누가 주체가 되어 구조조정할 것인가. 그나마 공익성을 기대하면서 한국경제의 장기적 성장잠재력 복원을 노린다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 당연하다. '관치금융'이라는 상투적 비판을 가할 일이 아니며 약탈적인 사모펀드 산업에 한국 산업의 주력 대기업들의 운명을 맡겨두는 것보다 훨씬 낳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라면 산업은행 등의 재무건전성 악화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재정 투입과 그리고 그것으로 모자랄 경우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양적 완화의 가능성과 그것의 장단점에 대한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계부채이다. 이미 1300조원으로 사상 최대에 달한 가계부채 문제의 해결 없이 장기 대불황은 피할 길이 없다. 서민 가계부채의 근본적인 장기 해법은 고용안정과 더불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근로소득을 창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그들의 소비를 옥죄고 있는 과중한 부채를 과감하게 축소시켜 줘야 한다. 고금리를 10% 안팎의 중금리로 전환시켜주는 현 정부의 서민금융지원 방식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빚 내서 빚 갚는' 악순환의 채무함정에 빠진 '한계가정'과 '취약 계층'의 과다부채를 축소시키기 위한 정부의 직접적이고 대대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그 재정에 필요한 국가예산이 모자란다면 한국은행의 양적 완화를 통한 재정자금 확보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양적 완화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한국은행이 주택금융공사에 추가 출자하고 주택금융공사는 그 자금으로 원리금 상환능력이 없는 한계가계의 부채를 시중은행으로부터 인수해 그 부채구조를 재조정하고 일정 부분 탕감해주자는 일각의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랄 해저드'라고 일방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닌데 왜냐하면 그래야만 부동산시장 경착륙과 그에 따른 한국경제 경착륙의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는 대규모 주택압류의 위험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빚의 함정에 빠져 소비를 못하는 가계를 채무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소비와 내수 부양, 그리고 경제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지금 같은 국내외 대불황의 시기에는 평상시와 다른 파격적인 정책 구상과 기획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양적완화로 인한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먼저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대불황 현실에서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더구나 악성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재정과 통화 규모는 과거 1998년 시기에 대기업 및 은행 부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2010년 저축은행 부실화에 투입된 공적자금 규모에 비교하면 크지 않다. 하물며 미국과 유럽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퍼부은 수조 달러에 비한다면 미미한 수준일 것이다.
정승일 가천대 글로벌경제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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