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대표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대표


또 한번의 기말감사 시즌이 종료됐다. 하지만 시즌이 끝나기도 전부터 회계법인들은 새로운 감사계약을 위해 분주하고, 또 어수선하다. 세상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과 세상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를 동시에 파는 사람처럼 회계사들은 기업을 잘 감시하면서도 또 기업의 입맛을 맞춰야 한다. 회계감사는 주주, 채권자, 정부, 시민들과 같은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업무인데 그 선임 권한은 기업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촌극이다.

실무를 하다 보면 기업들은 감사인에게 회사에 유리한 회계처리를 요구한다. 불법까지는 아니지만 가능한 유리한 방향으로 말이다. 이 때문에 분식회계 논란이 일 때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감사인들은 최소한의 양심만 지키려고 하고, 대중의 도덕적 눈높이는 높으니 말이다. 합법적으로 조세회피를 하면 처벌은 받지 않고 비난만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기업인들은 회계감사를 서비스로 바라본다. 회사가 돈을 주고, 선임권한까지 있는데 감사인이 무서울 것도 없고 요구사항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말을 듣지 않으면 돈을 주지 않으면 되고 다음 해에는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되니 감사인이 소신을 펼치기는 쉽지가 않다. 시장에서 바라보는 능력 있는 회계사란 분식회계를 발견하고 문제를 드러내는 회계사가 아니라 회사와 적당히 타협하고 회사의 논리를 잘 방어해주는 회계사다.

현실이 이럼에도 정부에서는 회계감사를 규제라고 한다. 회사를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가 규제라고 하니 이 또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에서 외부감사기준, 유한회사의 공시, 분식회계의 처벌에 대한 규정이 큰 폭으로 후퇴하게 됐다. 문제가 생기면 감사인에게 책임을 묻고 평상시에는 기업의 권한만 강화해주는 정부의 모순된 행태 역시 감사인들의 설자리를 점점 비좁게 한다. 현행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 1조에선 외부감사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고 기업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 한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기업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말 역시 이 사회에서는 모순인 모양이다. 정부에서 앞장서서 투명한 회계처리에 대한 목소리를 규제로 묶어버리니 말이다.

사회는 계속된 분식회계 논란으로 시끄럽지만, 나아지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 IMF사태가 터지기 전 굵직한 기업들이 분식회계로 망해버렸지만 여전히 분식 논란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하기 보다는 개별 기업의 문제로 치부해버렸고, 반성했지만 개선하진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분식회계에 대한 논란에 대해 비난은 쇄도하지만 건전한 비판은 별로 없다. 회계사로서 분식회계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부끄러워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구조적인 모순은 그대로 둔 채, 현상에 대해서만 비난하는 것 또한 답답할 뿐이다.

기업도, 국가도, 개인도, 모두가 경제는 성장하길 원하고 기업은 투명하길 원한다. 하지만 투명성과 성장이 상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때 마다 회계투명성은 후퇴해 왔다. 분명 회계투명성은 맹목적인 성장에 대해서는 규제가 맞다. 하지만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제대로 된 외부감사가 없다면 회사가 직원의 몫을 제대로 주지 않아도 알 길이 없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가 외부감사를 통해 산출이 되는 것이다. 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회계투명성에 관심을 가지고 종합적인 고민을 해 보았으면 한다. 회계사들도 정말, 제대로 된 회계감사를 하고 싶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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