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라인 없어 산업현장 혼선
정보공유 안되고 원격의료 정체
비트컴 · 인피니트 매출 '하락세'
내수성장 한계로 해외로 눈돌려


지난달 열린 한 의료기기 전시회에서 비트컴퓨터와 인피니트헬스케어 등 국내 의료 전문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각사의 솔루션을 연동해 병원끼리 환자의 전자의무기록(EMR)과 컴퓨터단층촬영(CT) 의료영상 등을 공유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이런 솔루션이 상용화되면 환자가 동네 병원에서 진료받은 정보를 별도의 진단서나 CD, 사진 등으로 받아가지 않더라도 다른 병원에 곧바로 전송할 수 있게 된다.

전시장에서는 '5년 후엔 이런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 적혀있었지만, 현장의 관계자들은 "사실 지금도 기술적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아쉬워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업체 관계자는 "의료정보 표준화나 공유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 기술이 있어도 실제 현장에 도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제도가 개선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된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전망이지만, 정작 국내 의료IT 전문기업들은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새로 추진하는 사업마다 규제에 가로막혀 기존 제품 업그레이드나 유지보수로 근근이 버티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병원급 EMR 점유율 1위 기업인 비트컴퓨터는 지난해 37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회사의 매출은 지난 2010년 이후로 300억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회사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제품인 EMR 매출은 200억원대에서 정체 상태다. 이미 국내 의료기관의 EMR 보급률이 병원급은 약 70%, 의원급은 90% 이상까지 높아졌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에서 진척 없는 원격의료=이 회사는 지난 2000년부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u헬스케어'를 지목하고 관련 기술 및 제품 개발에 힘써왔다. 그동안 423개 기관에 원격의료 시스템을 설치해 국내 구축실적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지난해 관련 매출은 70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최근 지자체에서 시범사업을 크게 해 매출이 늘었지만, 10년 넘게 원격의료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아 앞으로도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비트컴퓨터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10년 넘게 신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라며 "하지만 아직도 정부 시범사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점유율 1위 기업인 인피니트헬스케어는 매출이 2013년 646억원, 2014년 628억원, 지난해 618억원 등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1999년 정부가 의료기관이 PACS를 사용하면 의료보험 수가를 적용해주기로 하면서 국내 1500여 개 병원급 의료기관의 PACS 도입률은 70%에 달하고 있다. 인피니트헬스케어는 이 시기에 국내 점유율을 높이며 해외 시장으로 발을 넓혀 빠르게 성장했지만, 최근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최근 세계 PACS 시장은 각 병원의 의료영상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 병원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원격진료 등에 활용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규제 때문에 기회가 봉쇄돼 있기 때문이다.

◇의료정보 공유 못해 서비스 확장 불가=전 세계 PACS 시장 강자인 GE헬스케어는 지난해 전 세계 영상의료기기 50만개를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고 협진을 돕는 'GE 클라우드'를 선보였다. 인피니트헬스케어도 앞서 2012년에 클라우드 기반 PACS를 개발했지만, 국내에서는 병원 간 의료정보 공유가 의료법상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성장에 발목이 잡혔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병원이 환자의 의무기록을 병원 밖에도 저장할 수 있도록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업계에선 본격적인 의료정보 공유나 클라우드 활용이 어렵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기존 EMR과 PACS 등 의료IT 솔루션이 클라우드 환경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개인의무기록(EHR)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규제로 인해 시장이 다 막혀있다"며 "정부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표준화를 이끌어줘야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기업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 포기하는 기업들=규제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 성장 한계에 부딪히자 의료IT 기업들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기업의 의료IT 시장 진출로 기대를 모은 SK텔레콤과 서울대병원의 합작사인 헬스커넥트는 2012년 설립 이후 3년 동안 100억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다 최근 해외 진출로 노선을 틀었다. 이 회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의료정보시스템을 수출한 분당서울대병원 컨소시엄에 참여해 현지 병원에 환자·직원용 키오스크와 개인건강기록(PHR) 솔루션 등을 수출하고, 최근 중국 의료기관과 손잡고 원격 당뇨관리 솔루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진출도 녹록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일례로 국내 의원급 EMR 점유율 1위 기업인 유비케어는 지난 2013년부터 태국과 말레이시아, 미국, 중국 등에 법인을 설립해 현지 시장 진출을 추진했지만, 모두 적자만 남긴 채 철수했다. 해외 사업 실패와 신사업으로 추진한 건강관리 서비스 사업 등의 부진으로 성장이 정체된 이 회사는 지난해 말 SK케미칼에서 유니머스홀딩스로 주인이 바뀌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의료정보솔루션은 국가마다 의료시스템과 제도가 다르고 진입 장벽도 높기 때문에 해외 진출도 쉽지 않다"며 "일부 성공사례도 있지만 철저한 준비가 없이는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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