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조세회피 의혹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에 나오는 21만5천개의 회사이름 가운데 절반을 넘는 11만3천개의 등록지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ritish Virgin Islands)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스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가 국제사회의 대표적 조세회피처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버진아일랜드는 전 세계 45만2천개 기업의 등록지다. 홍콩에 이어 전 세계 2위다. 대부분 페이퍼 컴퍼니다.

버진아일랜드는 영국 본토 이외에 있는 14개 영국령 중 한 곳이다. 잘 알려진 케이먼군도와 버뮤다 등도 영국령이다.

인구 2만8천명 규모의 버진아일랜드는 영국령이지만 자치정부를 두고 있다. 물론 조세정책도 직접 정한다.

소득세, 자본이득세, 상속세 등이 없다. 페이퍼 컴퍼니의 실소유주들을 등록한 공식 문서도 없다.

파나마 페이퍼스에 따르면 파나마 최대 로펌 모색 폰세타에 의해 500개 은행들과 자회사들, 그리고 사무소들이 버진아일랜드에 1만5천600개에 달하는 페이퍼 컴퍼니를 등록했다.

영국에서는 이번 파문을 계기로 버진아일랜드 등 영국령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는 심지어 영국령에 대한 "직접 지배"를 요구하고 나섰다.

영국 정부는 2009년 정부 내 광범위한 부패를 이유로 영국령 턱스 앤 케이커스 제도(Turks and Caicos Islands)에 대해 3년간 "직접 지배"를 감행한 바 있다.

그러나 BBC 방송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직접 지배"는 헌법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사안이라고 보도했다.

그간 영국 정부는 버진아일랜드 등 영국령들에 페이퍼 컴퍼니의 실소유주를 등록한 중앙등기소를 설립할 것을 압박해왔지만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2003년 8월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조세회피처를 활용한 국제 탈세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진 이후 영국 정부가 취한 후속 조치였다.

영국인 세금전문가 조이론 모검은 블룸버그 통신에 "실소유주를 공개하는 중앙등기소 설립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조세회피처들은 다른 곳들과 경쟁하는데 투명성 강화는 경쟁력 상실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미 버진아일랜드에 대해 OCED 국제조세협약에 "대체로 부합한다"고 평가한데다 영국 정부도 버진아일랜드에 조세회피처 딱지를 붙이는 게 더는 적절하지 않다는 데 동의했다.

영국 정부가 버진아일랜드를 압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파나마 페이퍼스 파문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조세회피 대처에 대한 의지가 고조될 경우 캐머런 총리가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버진아일랜드에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캐머런 총리 자신도 작고한 부친이 영국령 버뮤다에 투자펀드를 설립해 큰손들의 자금을 운영해온 사실이 새로 드러나면서 조세회피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해있는 점도 이런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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