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서비스업보다 환경변화에 덜 민감해
안정적 경제 구축 기여 높아 제조업 기반 성장 주목해
고부가 첨단화 모색해야 다양한 정책지원 필요

손병호 KISTEP 정책기획본부장
손병호 KISTEP 정책기획본부장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저성장, 저소비, 저고용으로 대표되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라며 떠들썩하다. 한국도 2010년 이후, 3% 미만의 저성장 늪에 빠져있고, 1인당 GDP는 7년째 제자리며, 가계 부채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에 더해 미래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갈 청년층의 실업률도 올해 1월 9.5%로 전체 실업률의 약 3배에 달하고 있다.

더욱 암담한 것은 이러한 현실이 앞으로도 크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30년대에 1%대로 급락해 미국, 유럽, 일본보다 낮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사회 곳곳에서는 암울한 시대에 '흙수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화두가 됐고, 그들이 자리한 이 곳을 '헬조선'으로 비유한다.

다행히도 이러한 불안과 위기감을 타개하고자 정부는 창조경제의 기치 하에 다양한 대처방안과 고민을 쏟아내고 있다. 창업활성화 정책, 노동개혁 4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경제활성화 법안 등 다방면에서 새로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유인하고, 경제사회적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자,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었던 제조업의 경쟁력과 위상이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에 IT·철강·조선 등 20대 그룹 주력 계열사 중 65%에 해당하는 13개사의 매출이 감소했다. 작년에는 1961년 이래 처음으로 제조업 매출액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와 동시에 경제 내 서비스업 규모가 커지고, 제조업 성숙화에 따르는 고용창출력이 낮아지는 문제가 부각되며, 산업 구조를 기존의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에 융합과 상호 보완은 물론 필요하지만, 전면적인 전환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제조업은 내수침체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 환경 변화에 대해 서비스업보다 덜 민감하기 때문에 안정적 경제기반 구축에의 기여도가 상당히 높다. 제조업의 고용 수는 서비스업보다 적지만, 고용의 질이 높고, 전·후방 산업의 발전을 견인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제조업 고용자들의 소비가 내수성장의 핵심으로 기능하면서 결국 서비스업 고용의 전제조건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GDP 대비 서비스업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여전히 제조업 비중이 30% 이상 차지하고 있다.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는 제조업을 급하게 흔들어 우리 산업구조를 빠르게 변화시킬 경우, 의도하지 않은 경제적 실패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여기서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유익한 시사점을 준다. 1990년대 많은 나라들이 전통 제조업을 버리고, 산업구조를 금융 등 서비스업으로 전환시킬 때, 독일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유지·강화해 왔다. 1991년 27%였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현재도 23% 수준으로 꾸준히 유지되고 있으며, 첨단기술 혁신을 통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이는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고, 최근 미국의 '리메이킹 아메리카', 일본의 '산업재흥' 등 선진국들의 제조업 부흥 정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 역시 우리만의 강점인 제조업 기반의 성장에 주목하면서 고부가·첨단화로 새로운 일자리를 늘려갈 수 있는 '한국형 제조업 혁신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구체화해 나가야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먼저 대기업 중심 수직계열화 체제에서 탈피하여 기업들이 다양한 형태와 규모로 공존하는 건전한 산업생태계와 상생의 고용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특히,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부품·소재·장비와 뿌리산업 분야 중소기업들의 기술혁신 역량을 제고하여, 글로벌 히든챔피언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맞춤형 지원 체계 강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시스템반도체,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친환경 선박, 고성능 플라스틱 등 기존 제조업의 새로운 고부가가치 성장영역을 발굴하기 위한 R&D 지원을 강화하고, 해당 분야의 고용창출을 주도하는 고성장기업(가젤형 기업)의 지속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기술·자금·인력·세제 등 패키지형 정책지원책도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스마트 공장', 'ICMB(IoT·Cloud·Big data·Mobile) 기반 산업 플랫폼' 등 ICT와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기존 제조업의 생산성을 제고하는 정책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특히, 제조업 전·후방에 위치한 디자인, R&D 서비스, 엔지니어링, S/W, 물류, 유통 등 제조업 기반 지식서비스 산업은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산업들의 혁신역량을 강화하고, 해당 기업들의 전문화·글로벌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지원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제조업이 큰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해서 등한시하면 안된다. 오히려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고유의 한국형 제조업 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이다.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고용 있는 성장'과 '한국경제 재도약'을 견인해나갈 수 있는 '제조업의 신(新) 르네상스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손병호 KISTEP 정책기획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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