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길 숭실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경제 어려운 건 뉴스도 안 될 정도로 일상화돼있다. 경제위기에다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에 이르는 등 안보위기상황이 겹쳐있어 대단한 위기인데도 위기의식이 없는 게 오늘의 한국이다.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자동차·전자·조선·석유화학 등 주력업종 대부분이 침체돼있다. 산업화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성장산업은 싹을 틔우지 못한다. 세계적 관심사로 등장한 드론, 무인자동차, 로봇, 3D 프린팅,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은 진행 중이고 선진국이 선점하고 있다. 혁신은 광속으로 일어나면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새로운 산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버틸 것인지 전략도 구체적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세계경제 전망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살길은 노동시장 개혁이든 구조조정이든 혁신을 앞당기고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데에 있다. 나무 앞이 떨어지는 걸 보고 겨울이 온다고 느끼면 이미 늦다.

가능한 모든 정책과 수단을 동원해도 버티기가 힘겨운 게 엄혹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이 210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을 뿐, 알맹이 다 빠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 4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건 개탄스러운 일이 아닌가.

온갖 규제는 경제에 또 다른 걸림돌이다. 최근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박대통령은 "모든 규제를 물에 빠트리고 살릴 것만 건져야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규제혁파 끝장 토론을 한 게 언제였는데 규제혁파 이야기가 또 나오는 걸 보면 규제혁파는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가 돼있다. 규제를 없애지 못하면서 규제 없애겠다는 소리만 반복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중앙정부와 국회만 규제의 산실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규칙 등 자치법규 중 상위법에 위배되거나 법적 근거가 없는 불합리한 규제가 600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이 온통 규제 지뢰밭이다.

서울대 재학생들이 창업한 온라인 중고차 경매업체 '헤이딜러'의 서비스 중단에서 보듯 청년들의 벤처 창업의지를 꺾어버리고 있는 것도 규제의 칼날이다. 멀쩡하게 영업을 잘하고 있는 면세점의 문을 닫게 하는 것도 잘못된 규제의 본보기다. 일본은 면세점을 늘리고 관광객 유치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보이는 대로 해제하면서 관광산업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현대중공업 육상건조시설 한복판에 골리앗 크레인이 자리 잡고 있다. 스웨덴의 세계적 조선업체 코쿰스(Kockums)가 문을 닫으며 내놓은 것을 현대중공업이 막대한 해체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1달러에 사들인 것이다.

스웨덴은 100여 년간 조선강국이었고 스웨덴의 해안도시 말뫼는 1980년대 초까지 국가경제 중심이 되는 해양산업도시였다. 2002년 9월 25일 말뫼의 자부심이었던 코쿰스 크레인의 마지막 부분이 해체돼 운송선에 실려 한국으로 떠날 때 말뫼 주민들은 아쉬워했고 스웨덴 국영방송은 "말뫼가 울었다"며 장송곡을 틀었다. 이게 말뫼의 눈물(Tears of Malmoe)이다. 스웨덴 조선업이 한국에 밀렸고 세계 1위였던 한국 조선업은 저가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에 밀리고 있다. 한때 잘나가던 산업이나 기업도 상황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사라지는 건 당연하다. 경쟁력을 잃으면 어떤 산업도 '말뫼의 눈물'과 같은 상황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붙들고 있는가. 어느 산업, 어느 기업이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한국이 추락할 수 있다. 그런데도 노동기득권, 경제 발목 잡는 규제, 정쟁을 일삼고 더 퍼주기 경쟁을 벌이는 정치권은 한국의 추락을 부채질한다. 위기는 우리 앞에 이미 와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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