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 종합연구기관으로 세워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오는 4일 설립 50돌을 맞는다.
전쟁의 포화가 걷히고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던 1960년대에 우리나라가 '공업화'와 '산업화'라는 미지의 길을 가기 위해 절박하게 선택한 것이 과학기술 연구기관 설립이었다. 1962년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 추진되고 있었지만 1960년대 초 우리나라 핵심 산업은 농업이었고, 공업화와 전자산업이란 말은 이웃나라 일본에서나 전해 듣는 먼 얘기일 뿐이었다.
1965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이 정부 기관 연구소장과 과학자들을 불러 연회를 하는 자리에서 "작년에 2000만달러 어치나 수출했다"고 자랑한 품목은 특별한 기술 없이 손으로 뜰 수 있는 '스웨터'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일본은 10억달러 규모의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우리로서는 넘어보기 힘든 기술 선진국이었다.
그런 시대에 국민들이 목숨을 걸어 받아온 베트남전 파병 대가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얼룩진 20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고 새로운 '미래 50년을 열 과학기술 연구기관 설립에 쓰였다. KIST 출범 1년 후인 1967년에는 과학기술 전담 정부부처인 과학기술처가 출범했다.
KIST 설립 이후의 50년은 초고속 성장과 변화의 연속이었다. 후세에 '잘 사는 나라'를 물려주겠다는 절박함은 정부부처와 산업계, 과학기술계를 똘똘 뭉치게 만들었고, 특히 국가 지도자의 전폭적인 지원은 과학기술이 우리 산업과 국가시스템 곳곳에 빠르게 스며드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와 한창 격차를 벌이며 앞서가던 나라와 기업들을 쫓아가며 사람과 기술, 산업에 투자한 결과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세계적으로 강한 산업을 일궈냈다. 숨 가쁜 산업화의 길 구비구비에 KIST를 비롯한 과학기술 연구기관들이 내놓은 기술과 전략, 인물들은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50년이 지난 2016년. 대한민국호는 1966년과는 다른 차원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 50년 성장을 가능케 한 공식이 무너지고 초고속 성장의 주역이었던 주력산업들은 흔들리고 있다. 과학기술계와 기업은 선진국의 기술을 쫓는 대신 선두에서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천명'을 맞은 KIST 앞에는 미래 50년을 열어갈 새로운 기술비전과 기술을 내놓아야 한다는 숙제가 놓였다.
KIST는 치매, 로봇, 뇌, 미래농업, 신경망 모방 반도체, 양자컴퓨팅 등 미래기술 개발에 도전한다는 비전을 세우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나 온 반세기와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반세기에도 과거에 없던 미래를 만드는 도전을 통해 '기적'을 일구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연구소의 대문을 열고 다른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들과 머리를 맞대는 융합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KIST인들에게서 50년전 KIST를 세웠던 절박함, 해외에서 교수직과 연구원 자리를 박차고 KIST에 합류한 50년전 연구자들의 사명감을 읽을 수 있다. 위기신호가 켜진 대한민국호를 위해 우리 과학기술계가 다시 한번 신발 끈을 동여매고 달리기를 바란다. 또 연구자들이 밤에도 연구소에 불을 밝히고 신명 나게 연구할 수 있도록 국가 리더와 정부가 힘을 실어주길 기대한다.
안경애 생활과학부장 naturean@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