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 3000도 화염… 수백회 안전검증 고온·고압 극한환경서 연소 테스트 1·2단 75t급 · 3단 7t급 엔진달아 내년 12월 시험용 발사체 발사계획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발사체 1단에 들어가는 75t 액체로켓 엔진의 핵심 구성품인 연소기 성능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최초로 국내에서 개발해 우리 발사장에서 쏘아올린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발사 성공 3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찾아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나로호가 발사된 발사대 지하 러시아 기술자들이 사용하던 방에 들어서자 사람 키만 한 철재 케이스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이 안에는 발사체를 운영하기 위한 각종 전자장비들이 들어있었다. 당시 이 방에는 러시아 기술자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해 국내 기술진도 어떤 장비가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나로호 발사 이후 러시아 기술자들은 한국에서 제공한 케이스만 놔두고 안에 있던 장비는 모두 가져갔다.
강선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대팀장은 "발사체 기술을 가진 나라들은 대부분 기술을 숨긴다"며 "한국도 발사체 개발에 성공해 당당히 정보를 교류하는 상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75t 및 7t급 액체엔진의 핵심 구성품인 엔진 연소기의 성능을 시험하는 나로우주센터 연소기 연소시험 설비 전경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얼마 후면 이 케이스에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전자장비가 들어간다. 나로호에서는 러시아가 개발해 국내 기술진이 접근도 할 수 없었던 1단 로켓 액체엔진도 우리 손으로 만든다. 항우연은 나로호 발사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기술로 개발한 300톤급 3단형 로켓인 '한국형 발사체(KSLV-Ⅱ)'를 2020년 발사할 계획이다. 12년간 예산 1조9572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국가 프로젝트다. '우주발사체 기술 독립'의 결정체가 될 한국형 발사체는 이후 달탐사선과 차세대 인공위성들을 우주로 실어나르게 된다.
항우연은 나로우주센터에 발사체 개발에 필요한 추진기관 시험시설들을 구축해 발사체의 '심장'인 액체엔진 시험을 시작했다. 액체엔진의 핵심 부품인 연소기를 시험하는 설비에 들어서자 1m에 달하는 두툼한 외벽이 먼저 눈에 띄었다. 시험장 왼쪽에서는 발사체 3단에 들어가는 7t급 연소기를, 오른쪽에서는 1단과 2단에 들어가는 75t급 연소기를 시험한다. 연소기 아래로는 수직으로 30m, 방향을 바꿔 수평으로 50m 길이의 소음저감장치가 설치돼 있다. 연소기가 3000도에 이르는 화염을 뿜으면 초당 1800ℓ의 물을 뿌려 열을 식히고 소음을 줄인다. 이때 발생한 수증기가 외부에 설치된 거대한 녹색 굴뚝으로 뿜어져 나온다.
75t급 액체엔진 4기가 장착되는 한국형 발사체 1단은 1초에 케로신 연료를 318㎏, 200ℓ짜리 드럼통 2개분을 태운다. 산화제는 영하 180도의 극저온 상태인데, 연소가스 온도는 3500도까지 올라간다. 연소 시 압력은 대기압의 70배에 달한다. 이런 극한환경에서도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지상과 고공 시험설비에서 수백 차례 시험을 진행해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인해야 한다.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나로호 개발을 위한 선행연구를 할 때는 국내에 시험설비가 없어서 외국에 시험을 의뢰했는데, 아예 거절하거나 비용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불러 시험을 할 수 없었다"며 "독자 시험설비를 갖춰 시험할 수 있게 된 것만도 큰 의미"라고 말했다.
7t급 액체엔진은 지난해 100초 연속 연소시험에 성공해 앞으로 500초까지 시간을 늘려갈 계획이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 성공을 좌우할 75t급 액체엔진은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불안정 연소' 현상이 서서히 해결되고 있어 이르면 오는 3월부터 본격적인 시험에 들어간다. 연소 불안정이란 연소기 내에서 균일하게 연소가 되지 않고 여러 이유로 교란이 일어나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말한다. 자칫하면 시험을 하다 폭발할 수도 있어 발사체 엔진 개발 과정에서 경험과 노하우가 가장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조광래 항우연 원장은 "그동안 연구진을 힘들게 했던 연소 불안정 현상이 해결돼가고 있다"며 "최근 시험 결과가 목표에 근접하게 나오고 있는 만큼 기술적으로 진행 방향이 잡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항우연은 올해 75t급 액체엔진을 200차례 성공적으로 시험하면 내년 12월 시험용 발사체를 발사할 계획이다. 1단에 75t급 엔진, 2단에 7t급 엔진을 단 시험발사체 발사는 엔진이 제대로 개발됐는지 최종 확인하는 과정이다.
조 원장은 "발사체를 최초로 개발해 발사에 성공할 확률은 30∼40%에 불과하다"며 "지금도 세계적으로 발사체 발사 성공률이 93%인데, 이는 자동차나 항공기와 비교하면 굉장히 위험한 확률"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 12월 시험체 발사가 어렵지 않겠냐는 의구심도 있을 수 있지만 개발은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다소 도전적인 목표지만 계획대로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