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12월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육성법' 공포를 위한 법제처 문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보호·육성을 통한 과학진흥과 산업기술의 개발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로, 연구소 건설·운영의 정부 재정 지원, 국유재산의 무상 대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66년 12월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육성법' 공포를 위한 법제처 문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보호·육성을 통한 과학진흥과 산업기술의 개발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로, 연구소 건설·운영의 정부 재정 지원, 국유재산의 무상 대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70년 1월 9일 KIST 광장에 모인 초기 연구원들의 모습.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최형섭 초대 소장이다. 그는 KIST 설립 당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연구의 자율성 보장한 연구환경을 조성해 국가출연연구소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KIST 제공
1970년 1월 9일 KIST 광장에 모인 초기 연구원들의 모습.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최형섭 초대 소장이다. 그는 KIST 설립 당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연구의 자율성 보장한 연구환경을 조성해 국가출연연구소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KIST 제공


■ 사진으로 보는 과학기술 50년
(3) KIST 육성법 제정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초대 소장으로 임명된 최형섭 박사는 KIST가 법적으로 자율성을 보장받길 원했다. 연구원들이 정부의 간섭이나 통제 없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창의성을 갖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최 박사는 KIST 육성법안을 마련하면서 조문에 정부에서 지원하는 자금을 '출연금'이라고 명시했다. '출연(出捐)'이란 말은 '금품을 내어 도와주다'란 의미로, 출연금은 일종의 기부금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도와주기 위해 내준 돈이지, 무언가 돌려받기 위한 돈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말은 연구개발 사업 목적으로 국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되, 돈을 줬다고 정부가 연구소 운영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패였다.

이와 함께 최 박사는 KIST는 회계감사도 받지 않고 사업계획 승인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이 법안을 내자 국무회의에서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그해 연말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골격이 상당 부분 바뀌었고, 연구계획 승인과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항목도 들어갔다.

그러자 최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달려가 당장 법안을 개정해야겠다고 말하고는 다음 해 3월 임시국회에 개정안을 냈다. 국회에서는 시행해 보지도 않고 개정을 하냐며 펄쩍 뛰었다. 최 박사는 의원들을 만나 설득에 나섰고, 결국 KIST의 회계감사는 연구소 자체 공인회계사를 고용해 이들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정부에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최형섭 박사는 회고록에 당시 상황을 전하며 "일반 행정에서 쓰는 잣대로 연구업무를 재려 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흥청망청 쓰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자율성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질서'를 찾자는 것"이라고 남겼다.

남도영기자 namd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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