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산업기술 개발과 90년대 이후 미래기술 연구를 선도했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국내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KIST가 선도했던 연구들은 임직원과 육성 인력들을 통해 다양한 분야로 확산됐으며, 국내 대학과 산업체가 연구시스템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KIST 인력의 일부는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행정과 과학기술계획 입안 등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냈다.
KIST를 거쳐 간 연구 요원 중 정부기관 요직에 발탁돼 활약한 대표 인물은 초대 KIST 소장을 역임한 최형섭 박사를 꼽을 수 있다. 최 박사는 1971년 6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7년 6개월간 제2대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하면서 국가 과학기술 인프라를 마련하고 과학기술 진흥을 촉진하는 10여 개의 법령을 발의·제정했으며, 대덕연구학원단지 건립을 추진하는 등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기틀을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KIST에서 최초로 정부기관으로 전출한 인사는 1969년 6월 공업진흥청장으로 취임한 최종완 박사였으며, 이후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경상현 박사를 비롯해 제22대 과학기술부 장관 채영복 박사, 제23대 과학기술부 장관 박호군 박사, 제14대 환경부 장관 유영숙 박사, 제4대 해양수산부 차관 홍승용 박사 등이 정부 요직을 거쳤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KIST 출신 인력이 대학과 다른 연구소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구 노하우가 필요했던 전문연구소가 KIST 인력을 스카우트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초반 이후에는 산업체와 대학들에서도 본격적인 연구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KIST 인력을 대거 선발했다. 이 결과 1000명 가량의 KIST 인력이 전문연구소 또는 대학으로 전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KIST 선임급 이상의 연구원들이 가장 많이 전출한 분야는 교육기관으로, 1960년대 2명에서 1970년대 43명, 1980년대 54명으로 늘어 이후에는 매년 10명 이상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KIST 출신으로 대학 총장을 역임했거나 재직 중인 인사로는 한양대 한상준 박사, 단국대 양재현 박사, 인하대 홍승용 박사, 인천대 박호군 박사 등이 있다.
현재까지 KIST 창립 이후 퇴직한 연구 요원들의 약 40%인 750명은 산업계 임직원으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상당수는 재직 당시 관련을 맺은 아이템으로 직접 창업해 산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과 박기점 우영 회장을 들 수 있다. 이 회장은 1970년 KIST에 입소해 전산개발센터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전산기와 관련 소프트웨어·하드웨어 등을 연구하다 1978년 퇴직하고 1980년 7월 삼보컴퓨터를 창업했다. 박 회장은 KIST 기계공학부 공작실에 재직하며 금형 제작 기술을 연구하다 1978년 퇴직해 1981년 3월 종합전자부품회사 우영을 창업했다.
이밖에 산업계로 옮겨간 KIST인 중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인사들로는 민계식 현대중공업 사장, 삼미특수강의 이성규 사장과 천병두 사장, 여종기 LG화학 사장, 이형도 삼성전기 사장, 김형철 한국자원재생공사 사장, 전명우 덕흥기계산업공사 사장, 안영옥 오린코리아 사장, 이우영 영우화학 사장, 이용재 남해요업 사장, 이경서 담안산업 회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