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제조업 분야에서 고속 성장을 거둔 기업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대규모 선투자를 통해 꾸준하게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신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를 따라잡기에도 버거워지면서 기업의 고충이 만만치 않다. R&D에 따른 리스크(비용, 시간 등)가 커지면서 실패에 따른 기회비용도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기술 개발에 임하는 기업의 자세가 자체 개발에서 이전, 매입 등의 또다른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음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기술을 사오거나 판매하는, 즉 '기술이전'이라는 방법으로 실제 성공을 거둔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자. 건강식품 및 화장품 연구소 콜마비앤에이치는 2004년 회사 설립 초기만 하더라도 의욕적으로 R&D 투자를 단행했지만 몇 년 간 큰 빛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보유한 우수 기술을 이전받아 건강식품 사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와 약 7조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신약 기술 이전 및 수출에 성공한 한미약품도 마찬가지다. 이 기술은 기존 약품의 부작용을 줄이는 대신 약효는 대폭 개선한 것이다. 만약 한미약품이 신약을 직접 개발해서 제품을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실제 수익을 창출하는 데에는 아마 더 오래 걸렸을지 모른다.
중소·중견기업은 R&D에 따른 리스크를 직접 감수하는 부담이 아무래도 대기업보다 크다. 기존에 개발돼 있는 기술 중 필요한 것을 이전받아 사업화에 나서는 것이 직접 개발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는 지혜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은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까. 막상 기술을 찾는다고 해도 내가 정말 원하는 기술인지, 비싼 특허료를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까. 그래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지난 2000년부터 국가기술은행(NTB, National Tech Bank)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중이다. NTB는 국가가 지원한 R&D사업의 결과로 만들어진 기술의 정보, 공공연구기관이 보유한 특허 내용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기술 데이터베이스(DB)다. 현재 약 10만 건 이상의 공공기술이 등록되어 있으며, 대기업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일부 기술(특허) 정보도 등록돼 있다. 기술 검색 외에 기술을 실제 거래할 수 있는 장터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공공 기술이 기업으로 이전되는 비율은 약 31.7%로,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KIAT는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를 도입하여 NTB에 대한 기업들의 접근성과 편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우선 기술 정보를 소개하는 어려운 용어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일상의 비즈니스 언어로 가공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또 공개된 기술정보 내용이 한정돼 있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잘 찾지 못할 경우에는 온라인으로 기술 수요를 직접 접수 받아서 전문가 컨설팅 및 매칭 서비스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기업이나 일반인들이 NTB 정보를 일상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행정자치부가 운영하는 공공데이터포털(data.go.kr)을 통해 기술정보 개방도 단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NTB 이용자 수는 연평균 20만명에서 67만명으로 세 배 이상 확대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제는 R&D에 있어서도 운용의 묘가 필요한 시대다.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 먹거리를 위한 지속적인 직접 투자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기술을 외부에서 수혈해 상용화에 필요한 추가 개발만 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NTB는 이처럼 기술이전을 원하는 기업을 위해 훌륭한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올해도 정부와 KIAT는 더 많은 기업들이 기술이전의 혜택을 맛볼 수 있도록 NTB의 기술 동향 정보를 강화하고 기술거래를 담당하는 중개기관들의 참여도 확대시킬 계획이다. NTB를 통해 현명하고 지혜롭게 R&D하는 기업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김류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기술사업화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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