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인수합병 방침은 방송 역사상 최초로
복수 방송면허 취득 사안 시장획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명확한 정책원칙 필요해

김광재 한양사이버대 광고미디어학과 교수
김광재 한양사이버대 광고미디어학과 교수


SK의 CJ헬로비전 인수방침이 언론에 발표된 후, 제기된 논의들은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론 식상하다.

획정된 시장을 뛰어넘어 전개되고 있는 미디어 사업자 간 인수합병 방침과 이를 둘러싼 논리들이 연구대상으로서 흥미를 불어 넣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주장들은 과거 미디어산업계에서 제기된 다양한 이슈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탓이다. 새로움을 느끼기 어렵다는 의미다.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대립적 시각, 엄격한 정책집행을 요구하는 개별 사업자의 상반된 입장 등이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변함없이 제자리를 맴도는 논의와 주장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전개된 미디어시장의 이슈는 다양했고, 변화 역시 가팔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시장의 이슈와 관련된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다. 미디어기업의 시장 편입을 받아들이기가 제법 힘들었던 시절에도, 그리고 시장의 경쟁과 이익이라는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현재도 논의는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만, 현재의 논의가 과거와 다른 것은 미디어산업을 둘러싸고, 시장주의적 관점과 공동체주의적 관점의 병립을 좀 더 대등하게 바라보며 진행되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는 당연히 5년 혹은 10년을 내다보는 정책적 원칙이 확립돼 있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대증요법(對症療法)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던 관행이 시장에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주장만 난무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과연 이 같은 관행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그리고 SK의 인수합병 과정 역시 과거와 동일하게 혹은 조용하게 사안을 마무리 짓는 것으로 안도하는 시장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이에 대한 대다수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매우 부정적일 것이다. 그러기엔 SK의 인수합병이 갖는 정책적 의미가 현시점에선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한 사업자가 복수 방송면허를 취득하게 되는 사안인데다가 최초로 전국 방송사업자가 지역 방송사업자를 인수합병하는 일이다. 자칫하면, 시장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일부 케이블TV 사업자(SO)들에겐 퇴로를 열어줬다는 신호를 줄 수도 있다. 또한 미디어사업자의 시장획정 자체를 무의미한 상황으로 만드는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정책적 정의로서 존재하는 방송서비스 사업자의 역무 역시 의미를 상실할 가능성마저 있다.

이 모든 것이 특정 사업자 입장에선 부담스럽지만, 또 다른 특정 사업에게는 희망하는 혹은 가능한 시나리오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책당국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적정한 선의 타협을 시도해선 안 된다. 사안이 갖는 중대성을 이번 기회에라도 명확히 하고, 정책적 원칙을 명확히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물론 이는 긴 숙고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고, 시장의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정책당국의 열의 역시 요구되는 일이다. 마무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과정을 포기해선 안 된다. 스스로 설정한 마감에 맞춰 서둘러 결과를 도출할 필요도 없다. 시장은 이번 사안이 갖는 중대성을 매우 무겁게 여기고 있으며, 향후 전개될 정책의 다양한 시그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케이블TV정책의 변화가 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거대자본의 방송사업 진입장벽이 허물어진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SK사태를 둘러싸고, 학계를 비롯해 정책당국, 산업계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 간 제법 치열한 갑론을박이 진행되고 있고, 당분간 그 논쟁은 지속될 것이다. 이 논쟁은 그러나 결코 소모적인 것이 아니다. 정책당국은 오히려 논쟁의 중심에서 이해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제부턴 미디어 산업계가 시끄럽더라도,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다소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견지해야 할 자세는 당장의 임기응변이 아닌, 정책원칙의 수립과 이를 통해 시장에 보내는 선명한 신호여야 한다.


김광재 한양사이버대 광고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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