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발주하는 모든 사업은 공적 자금이 투입되므로 그 평가에 있어서 어떤 경우보다 높은 공정성과 투명성이 요구되는 보수적인 영역이다. 평가제도는 국가의 대학 입시 제도와 유사한 속성을 갖는다고 본다. 공정성과 일관성에 기반한 지금까지의 제도를 존중해야하기도 하지만, 급격한 변화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 끊임없이 문제점을 발굴하고 개선해야 한다. ICT R&D 평가에서도 공정성과 전문성이란 두 가지 축을 기울임 없이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융복합 R&D가 확대되는 기술 환경의 변화 속에서 평가의 전문성 확보가 더 큰 숙제로 부각되고 있다.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진행하는 일반적인 R&D 과제의 평가 방식은 평가위원 개개인의 전문성이 상호 보완되어 상승효과를 가질 수 있다. 특히, 기술 분야간 융합이 보편화된 최근의 추세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의 종합적 평가가 요구된다.
피평가자가 제기하는 전문성에 대한 이슈는 평가의 방법과 절차에 관련된 것보다는 평가위원 즉, 사람에 대한 불만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특히, 융복합형 대형 과제의 경우 다양한 분야와 복잡한 연구의 줄거리를 전체적으로 평가할 전문가를 위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과제의 최고 전문가라 자부하는 피평가자의 입장에서는 항상 전문성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 국가의 R&D 평가 방법을 벤치마크해 보더라도 우리 평가방식의 기본 틀은 잘 되어 있다고 본다. 다만 우리와는 다른 몇 가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데, 첫째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여 평가를 진행하고 있고 둘째, 평가위원회 방식을 대부분 활용하고 있으나 평가의 공정성과 전문성 확보를 위해 2~3단계의 평가 절차를 거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가 담당 인력의 전문성이 상당히 우수하다고 보고되고 있다.
해외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결국 '시간'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는 1년 단위 국가 예산 회계 시스템에서 과제 기획부터 평가, 성과관리까지 한 주기로 시행해야 한다. 연초에 수백 개의 선정·연차평가를 시행하고 당해연도 협약을 집중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평가에 긴 시간을 할애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고된 평가 담당자의 전문성 역시 평가 담당자가 긴 시간 동안 해당 분야의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환경은 우리와 차이가 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는 2014년 ICT R&D 전담기관으로 출범한 이후 평가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우리 평가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융복합 R&D과제 평가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으로 개방형 평가, 상호토론 평가방법 등 다양한 평가방법들을 시도했다. 올해는 서면평가-발표평가의 2단계 평가, 온라인 평가 등을 시범도입 할 예정에 있다. 또한 기술세미나 등의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평가 담당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개방형 평가는 다수 전문가와 일반인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어 평가위원회 방식의 소수 평가위원이 갖는 경험과 식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상호토론 평가방법은 피평가자가 적어도 해당과제에 대해 가장 전문가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피평가자 간 상호토론을 평가위원이 지켜봄으로써 우위를 가리는 방식이다. 제한된 평가시간으로 인해 결여될 수 있는 전문성의 질을 보완할 수 있다. 또,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둘 다 해소할 수 있는 온라인 평가와 사전 서면평가 결과를 발표평가 평가위원회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서면평가-발표평가의 2단계 평가방식은 최고의 전문가를 평가위원으로 위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피평가자 및 평가위원의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의 시범 적용을 확대해 과제 특성별 최적의 평가방법을 정착시켜 나가고 전문성 이슈를 최소화할 계획이다.
융복합이 대세인 최근의 ICT R&D 과제에 적합한 평가방법 개선이 평가 자체를 신뢰하는 문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전담기관의 평가 프로세스 개선 노력뿐 아니라, 평가과정에 있어 인적 네트워크나 후광 효과에 의존하려는 분위기 탈피, 평가결과에 대한 원초적 불신 등의 심리적 변화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이상홍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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