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D.로드릭은 4년 전 출간한 '세계화의 역설(Paradox of Globalization)'에서 세계화, 민주주의 그리고 국가권력은 병립할 수 없는 속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을 했다. 그는 너무 앞서간 세계화가 민주주의와 국가권력과의 갈등을 줄이고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다소 후퇴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로드릭의 주장은 123개국이 서명, 1995년 출범한 WTO체제가 다자간 무역협정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대신 양자간 협정(FTA)으로 대체된 추세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가 많은 나라와 FTA를 체결한 것도 따지고 보면 사회정치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무역을 증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종래와 다른 형태의 무역협정으로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우선 TPP는 전세계 GDP의 40%, 교역량의 25%를 차지하는 12개국을 대상으로 하는 다자간협정이다. 따라서 로드릭이 우려하는 바와 달리 희망하는 회원국이 참여하는 작은 규모의 세계화가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TPP는 금융서비스 국제화, 지적재산권 보호, 인터넷경제의 지배구조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국제규범을 도입, 사실상 포스트 WTO체제의 성격을 가진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약속했던 구조개혁을 TPP가 명시한 농업, 의료, 각종 보조금제도 등과 연계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 TPP는 국영기업규제 등 산업정책과 대외수지 개선을 노린 인위적 환율개입금지 등 외환정책에 대한 규율을 명기하고 있다. 이들 조항은 TPP 참여 시 우리나라가 수용해야 하는 조건이다.

TPP가 발효되기 위해서는 참여국이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현재 일부 미 대선주자들이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는 있으나 사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반대할 명분도 실리도 없다. 미국은 EU를 상대로 범대서양 무역투자 동반자협정(TTIP)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

중국 역시 자신의 주도로 세계화를 이끌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지역의 철도, 항구 등 인프라를 건설, 위안화권을 구축하고 자유로운 무역과 투자를 영위하고자 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가 그것이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으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신개발은행(NDB)도 기존 국제금융질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다.

언론에서 TPP 가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는 있으나 주로 미시적 시각에서 산업별 득실을 따지고 있다. 그러나 TPP가입은 단지 수출만이 아니라 TPP가 천명한 국제규범이 21세기 우리 경제가 더 높은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 여부에 더 많은 무게를 둬야 한다. 이미 많은 나라들과 FTA를 체결했거나 할 수 있다고 해서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TPP는 단순히 무역협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회원국 간 높은 수준의 경제 금융의 연계, 나아가 중요한 지정학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로드릭이 정확히 진단은 하였지만 세계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미묘하게 변화하고 있다. 새롭게 재편성되는 세계화 추세에 우리나라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나 사반세기 이상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지금은 사그라지는 우리가 알았던 세계화가 1980년대 초에 시작됐음을 상기하면 그렇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