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규 정경부장
임윤규 정경부장

'당신의 ( )가 좋아요, 그냥.'

지난 봄, 서울시청 건물 외벽에 걸린 글귀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았다. 시민들은 저마다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들을 생각했다. 향기, 온기, 목소리 등으로부터 아름다운 형용사도 넣어 봤다. 모든 것을 담아내는 단어는 '전부'다. 당신의 전부가 좋아요, 그냥. 좋은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 없이 무조건, 전부, 그냥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글귀에 반대의 뜻을 담으면 금방 무서움이 된다.

당신의 전부가 싫어요, 그냥.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근로의사가 없다'는 사람의 비중이 최근 9년 사이 2.5배나 높아졌다고 밝혔다. 가장 최근 조사자료인 2013년 비경제활동의 이유는 근로무능력 3.9%, 군복무 1.2%, 학업 34.4%, 가사·양육·간병 29.8%, 구직활동 포기 4.0%, 근로의사 없음 26.5%, 기타 1.3% 등이다. 근로의사가 없다는 사람의 비중은 2005년 10.6%에서 2013년 26.5%로 2.5배 늘었다.

근로능력 없음이 17.5%에서 3.9%로 대폭 감소한 것과 비교된다. 가사·양육·간병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도 41.0%에서 29.8%로 감소했다.

비경제활동의 이유로 '일 할 의사가 없다'는 답이 학업이나 불가피한 상황(가사, 양육, 간병)과 비슷한 비중을 차지한 것은 충격이다. 근로의사가 없다는 말은 '일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비경제활동의 이유다. '당신의 전부가 싫어요, 그냥'처럼 '일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과 같은 말로 들린다.

비경제활동인구는 만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을 말한다. 1994년 7월 말 한국의 비경제활동인구는 1300여만 명에서, 21년 후 2015년 9월 1600만 명에 이른다. 통계대로라면 1600만 명 가운데 26.5%인 424만 명이 그냥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 셈이다.

일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9년 사이 이처럼 증가한 이유는 뭘까.

그동안 사회복지 시스템이 좋아져 일하지 않고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아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에서 구직활동 포기자 중 청장년층의 비중 증가현상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구직포기자 3명 중 1명꼴인 31.3%가 35~55세 연령대다. 지난 2005년 조사 때는 12.7% 였다. 청장년층의 구직활동 포기가 급증한 셈이다.

정부는 취업률이 개선되고 있다고 밝힌다. 9월 취업자 수는 2626만400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2591만7000명 보다 1.3%(34만7000명) 증가했다. 실업률은 3.2%로 전달에 비해 0.2%포인트 떨어져 작년 11월(3.1%)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5~29세 청년 실업률 역시 7.9%로 10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며 청년실업 증가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반박했다.

그러나 현장은 여전히 춥다. 1시간 이상만 일해도 취업자 수로 집계되니, 통계 수치가 주는 착시현상을 자랑처럼 늘어놓을 일만은 아니다. 근무시간은 짧고, 임금은 적은 시간제·비정규직의 증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게 실상이다.

이들을 일하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유의사로 의미가 달라진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시간제·비정규직으로 취업자 수를 늘리는 것보다, 근로의사가 없는 이들을 일터로 끌어내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냥, 일하고 싶지 않다는 26.5%, 대한민국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에 노동현장이 보내는 심각한 신호다.

임윤규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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