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에 관심을 갖는 문과 계열 대학생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공계 기피로 홍역을 앓던 공대 교수들이 표정 관리에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다. 정부가 공대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주지 않으면 공학을 선택하는 문과 학생들을 수용할 수 없다고 어깃장을 놓는 대학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묘하다. 공대에 대한 갑작스러운 관심은 청년들의 진로가 취업절벽에 막혀버린 탓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국민은 연령에 상관없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이룩한 경제·사회·문화의 놀라운 발전이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투자와 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사회·경제·안보·국방·안전과 삶의 질 향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런 사실은 최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이 실시한 '과학기술 국민인식 통계조사'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그런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과학기술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특히 과학기술을 통한 우리 사회의 놀라운 발전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딱딱하고, 어렵고, 재미없는 과학을 애써 공부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과학기술은 과학을 전공한 과학자나 과학에 관심을 가진 이공계 학생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대부분의 문과 출신 국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오로지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심지어 과학자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기초과학'을 미래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응용기술은 지금 당장의 산업화를 위한 것이고, 원천기술은 앞으로 10년 후를 위한 준비이고, 기초연구는 그 보다 훨씬 더 먼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래서 기초연구를 소홀히 하면 20년 후의 경제적 성장동력 확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야단들이다.
확실한 근거도 제시한다. 20세기 최대의 과학적 성과인 양자역학·상대성이론·생명과학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고 한다. 양자역학은 반세기가 지나서 등장한 트랜지스터와 반도체 산업을 만들어냈고, 상대성 이론은 자동차용 네비게이션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GPS(지구위치확인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DNA에 숨겨진 생명의 신비를 밝혀낸 생명과학도 맞춤형 세포 치료 기술을 가능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현대 과학의 기둥이 모두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의 성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학문화 확산을 위해 정부가 설립한 재단에서는 어린이들에게 무엇이나 만들어보도록 요구하는 정체불명의 '메이커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를 처음 만들었다는 미국식 '차고'(garage)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은 창조적인 기술을 찾아내도록 요구하는 'X 프로젝트'도 있다고 한다. 모두가 돈 버는 기술을 찾아내는 것이 과학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착각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과학기술을 통해 돈 버는 기술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 개발이 과학기술의 전부라면 모든 국민에게 과학기술을 강요할 이유가 없다. 기술 개발은 전문가에게 맡겨두는 것이 마땅하다. 일반 국민은 개발된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기술 개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과학에 관심을 갖는다고 누구나 발명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모두가 현대 과학의 진정한 가치를 정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어떤 곳에서 살고 있는 누구인지를 설명해주는 것이 기초과학이다. 현대 과학은 자연과 인간의 정체를 밝혀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등불이다. 그런 기초과학을 노벨상이나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