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관 '아이시스' 주축… 지식·경험 겸비한 인재에 투자 1억4000만원으로 설립 모바일게임사 5800억에 매각 '쾌거' 사업성 검증된 특허 출원… 사업화 방향까지 컨설팅 '신뢰' ■ 융합신산업 '기회의 땅' 연다 (1) 영국 옥스퍼드대학 기술사업화 현장
영국 옥스퍼드대학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 전경. 13명의 영국 수상을 배출한 세계적인 명문인 이 학교는 체계적인 기술사업화 조직을 두고 연구실에서 탄생한 기술을 시장과 산업현장에 내놓고 있다.
연구와 산업현장, 일상생활 곳곳에서 기술혁신과 융합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핀테크, 스마트자동차, 스마트그리드 등 기존 산업 구분을 무너뜨린 파괴적 산업이 속속 등장하면서 전통산업 혁신과 파괴적 혁신기업·미래형 벤처 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강한 기술'이다. 기술을 기반으로 '융합 신산업'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국내외 R&D와 기술사업화, 산업 현장을 조명한다.
영국 지성의 상징인 대학 도시 옥스퍼드에 방문하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르는 학교가 바로 옥스퍼드대학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다. 9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옥스퍼드대학의 30여 개 칼리지 중 하나인 이 학교는 13명의 영국 수상을 배출한 최고의 명문으로 잘 알려진 동시에, 아름다운 캠퍼스와 영화 '해리포터'의 식당 장면 촬영지로 더욱 유명하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촛대가 공중을 날아다니고 액자 속 인물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이 학교 연회장에서는 동화 속 마법을 현실로 만들어 줄 첨단 과학기술이 세상과 만나는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옥스퍼드대학 연구자들과 전 세계 기술기업들로 구성된 포럼인 '옥스퍼드 이노베이션 소사이어티(OIS)'는 옥스퍼드대학 내 연회장에서 정기적으로 저녁 만찬을 열고 교수들과 기업 관계자, 벤처 투자자, 기술이전 전문가 등 회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기술정보를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다진다. 포럼을 주관하는 기관인 '아이시스이노베이션'은 200개 가까운 기업 회원들에게 매년 6800유로의 연회비를 받고 옥스퍼드대학의 연구자와 기술, 특허 등 정보를 제공한다.
◇연구와 산업현장 잇는 기술사업화 전문기관= 옥스퍼드대학의 연구성과를 사업화하기 위해 설립된 전문기관인 아이시스 이노베이션은 △특허출원과 기술이전, 스핀아웃 회사 설립 등을 맡는 '아이시스테크놀로지트랜스퍼' △다른 대학이나 기업이 옥스퍼드대 연구자를 통해 기술문제를 해결하도록 컨설팅하는 '옥스퍼드유니버시티컨설팅' △전 세계 대학과 기업, 정부기관 등에 기술이전과 기술 혁신 컨설팅과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시스엔터프라이즈' 등 3개 그룹으로 구성돼 있다.
전 세계 기업들이 옥스퍼드대학의 연구성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5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옥스퍼드대학은 한 해 연구비로 영국에서 가장 많은 5억6800만 파운드(약 9600억원)를 투자, 세계 최고 명문대학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옥스퍼드'란 이름만으로 기술 사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시스이노베이션은 1988년 설립 이후 2001년까지 10년 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매년 적자를 내며 대학의 지원금으로 버티던 아이시스는 2000년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매년 100만 파운드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역량 있는 직원들을 대거 채용하면서 변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후 기술이전과 컨설팅 수입 등 수입원을 다변화하면서 2001년을 기점으로 매출이 비약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매출은 1450만 파운드(약 245억원)를 기록했다. 2005년부터는 대학에서 지원받는 보조금보다 대학에 돌려주는 수익금이 더 많아졌고, 작년에는 대학에서 310만 파운드를 지원받고 670만 파운드를 수익으로 돌려줬다.
영국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에서 열린 '옥스퍼드 이노베이션 소사이어티(OIS)' 행사 모습. 옥스퍼드대 연구자들과 전 세계 기술기업들로 구성된 포럼인 OIS는 매년 옥스퍼드대 내 연회장에서 저녁 만찬을 연다. 이 자리에서 옥스포드대 교수들과 기업 관계자, 벤처 투자자, 기술이전 전문가 등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기술정보를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다진다.
◇지식과 경험 갖춘 '인재'가 경쟁력= 현재 아이시스에 적을 두고 영국, 중국, 홍콩, 스페인 등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약 100명에 이른다. 이 중 40여 명이 이공계 박사 출신이고, 14명이 MBA를 이수했다. 전문 컨설턴트들은 대부분 산업계 근무 경험이 있어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뿐 아니라, 각자 전문분야에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국내 대학의 기술이전전담조직(TLO)이나 산학협력단이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인재 투자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
옥스퍼드대학은 매년 100건 내외의 특허를 출원한다. 지난해에는 309개의 발명이 신고돼 그중 92건이 특허로 출원됐다. 국내 상위 대학의 연간 특허출원 건수가 300건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특허의 양은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옥스퍼드에서 출원한 특허는 대부분 특허협력약조(PCT)에 따라 출원되며, 이 중 절반 정도가 국제특허로 이어진다. 국내에서 해외특허 출원 비율이 높은 대학들을 꼽아도 10%대에 그치는 것과 비교하면 질적 차이가 크다는 의미다. 아이시스에서는 특허출원 여부를 심사하는 전문 컨설턴트들이 상업성이 검증된 발명만을 선별해 전략적으로 특허를 출원한다.
기술에 대해 잘 알 뿐 아니라 연구자들에게 사업화 방향을 정확하게 컨설팅해 줄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컨설턴트들이 출원한 옥스퍼드 특허 기술은 기업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그 결과 아이시스를 통해 이뤄진 기술이전 건수는 2004년 31건에서 작년 105건으로 10년간 3배 이상 늘어났고, 같은 기간 기술이전 컨설팅 건수는 50건에서 398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피터 무어 박사
아이시스의 피터 무어 박사(매니징 디렉터)는 "아이시스의 성공적인 기술 사업화 비결은 우수한 인재"라며 "80% 이상의 시니어 스텝들이 해당 분야 박사학위나 MBA를 보유하고 있으며, 기술과 비즈니스 양쪽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인재들이 50여 개 국가를 대상으로 기술이전과 혁신 관리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 참여 이끄는 '등대 전략'= 대학의 기술 사업화를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교수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세계적 명문으로 이름 높은 옥스퍼드대학 교수들에게는 학문적 성과를 보여줄 논문 발표가 더 중요할 수 있는데, 기술 사업화에 힘을 쓰다가는 이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사업화를 위해선 필수적으로 기술에 대한 가치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 교수들이 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시스가 내놓은 전략이 '등대 모델'이다. 아이시스는 주 1회 공과대학별로 서비스 설명회를 열고, 평소 교수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컨설턴트들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피터 무어 박사는 "연구자들에게 아이시스의 기술이전 관련 서비스를 홍보하고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학자들이 원하는 시점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평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기술이전 수익배분 규칙을 미리 마련해 연구자의 기술이전 활동 관련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옥스퍼드에서 창출되는 모든 교직원과 학생들의 지식재산권에 대한 권리는 우선 대학이 보유한다. 대학이 보유한 2333개 특허를 관리하는 아이시스는 연구결과를 상업화하기를 원하는 학생이나 연구원들을 도와 기술이전이나 스핀아웃 기업(연구원이 자신이 참여한 연구결과를 갖고 직접 창업한 벤처기업) 설립 등의 방법으로 수익을 공유한다.
◇스핀아웃 기업 '5800억 대박'= 옥스퍼드대학에서는 아이시스를 통해 매년 7∼8개 스핀아웃 회사가 설립되고 있고, 지금까지 100여 곳에 이른다. 학교 측은 4개 벤처펀드 등 다양한 재원을 마련해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또 기업가정신센터, 소프트웨어 인큐베이터 등 창업특화센터와, 기업 운영 공간과 연구설비 등을 제공하는 사이언스파크를 운영해 연구자와 학생들의 창업을 실질적으로 지원한다.
특히 아이시스는 '아이시스엔젤네트워크(IAN)'를 설립해 엔젤 투자자나 벤처캐피털사가 아이시스의 창업회사에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현재 100여개 회사가 참여해 창업회사에 대한 정보를 우선 제공받고 있다. 아이시스의 이 같은 전문적 지원 하에 8만2500파운드(약 1억4000만원)를 지원받아 지난 2001년 설립된 모바일 게임 회사 '내츄럴모션'은 지난해 2월 미국의 소셜게임 회사 징가에 5억2700만달러(약 5800억원)에 팔리는 '대박'을 거두기도 했다.
무어 박사는 "스핀아웃 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에는 아이시스와 연구자, 투자자와 경영, 법률, 회계, 은행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순차적으로 이뤄진다"며 "창업 후에는 스핀아웃 기업의 안정적 운영을 돕기 위해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이끌어 가는 동시에 대학 연구실의 시니어 연구원이 신생 기업의 연구소장으로 옮겨가도록 권장해 계속 관계를 유지하도록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