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전염병, 원자력 등 과학기술에 뿌리를 둔 이슈가 국가·사회적 논란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또 빈곤, 에너지 부족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과학기술 분야에 주어진 과제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과학기술계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과학기술을 알리고 대중화하는 데 초점을 뒀던 '과학 커뮤니케이션과 과학문화 활동'의 깊이와 넓이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과학문화와 소통, 창의교육 부문의 한국과 미국 대표 기관을 각각 이끄는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과 제랄딘 리치먼드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회장에게 그 답을 물었다. 사회=안경애 생활과학부장
▶사회=한국에서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 광우병 등 과학기술과 직접 연결된 이슈가 사회적 논란과 갈등으로 번진 경험이 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 해결과 갈등 조정을 위한 과학기술 분야의 역할이 커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계와 정부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제랄딘 리치먼드 회장=과학기술계와 정부(리더), 그리고 대중은 서로 삼각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이슈 상황에서 정부 리더, 즉 국가지도층의 '사이언스 리더십'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 과학 관련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지도층은 과학기술계의 목소리에 경청할 줄 아는 자세와 식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과학자로 대표되는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 관련 문제를 대중에게 잘 이해시킬 수 있는 소통에 집중해야 하고, 대중은 평소에 과학적 소양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이 삼각관계는 균형의 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김승환 이사장=사실 과거에는 과학기술 발전이 사회 현실과 거리가 먼 부분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하고 사고방식이 바뀌고 있는 만큼,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고, 또 그렇게 변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단체는 사회적 이슈들에 민감해야 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 미래 이슈나 사회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 가운데 과학기술과 관련된 것들이 너무나 많다. 과학기술자나 과학자 단체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대중과 소통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리치먼드 회장이 언급한 삼각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이 삼각관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지.
▶리치먼드 회장=AAAS의 경우 과학자들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과 네트워킹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일례로 AAAS 본부가 워싱턴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정치인과 정부 고위 관계자를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자들이 자연스럽게 이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가진다. 반대로 국가지도층은 자신의 보좌관으로 과학자들을 배치하거나 과학자들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배치해 과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있다. 그리고 대중들도 과학에 대한 소양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통해 식견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김 이사장=과학창의재단도 AAAS와 비슷한 미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 재단을 포함해 과총(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같은 단체들이 과학기술의 사회적 확산과 과학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은 이 삼각관계가 원활하게 운영되고, 지속되기 위한 키워드는 '소통'과 '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광우병, 메르스, 세월호 등 사회 전체를 강타한 이슈에서 과학기술계가 시의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사회와 커뮤니케이션하고, 갈등 조정과 문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다. 여기에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사회적 이슈가 확산되는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졌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닌가.
▶리치먼드 회장=보건 분야의 경우 특히 이런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미국도 탄저균 이슈 등 비슷한 경험이 있다. 전염병 대응기관인 미국질병관리본부(CDC)는 탄저균 루머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사태를 진정시킬 의무가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가 중요하다. CDC의 경우 이런 대중과의 신뢰가 비교적 잘 구축돼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이나 정보가 통제된 나라의 경우 정부가 발표하는 내용을 대중들이 의심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대중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밖에 없다. 오랜 기간을 통해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이사장=IT가 발전하고 널리 활용되면서 인터넷이나 휴대폰, 소셜미디어 등이 우리 사회의 소통 메커니즘을 완전히 바꾸었다. 전문지식도 중요하지만, 이를 국민들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국 과학자들의 역할이다.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이것이 대중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역시 '신뢰'라는 자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평소에 꾸준하게 대중과의 소통 노력에 나서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사회=과학기술 분야 이슈도 시대에 맞게 바뀌는데, 한국의 경우 최근 R&D의 생산성과 경제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는 기초연구, 원천연구에 초점이 맞춰졌다. 과학기술계는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가.
▶리치먼드 회장=미국도 그렇다. 과학이 발전하려면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정책 변화에 따라 중심을 잡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예를 들어 태양에너지 개발이 80년대에는 정부 지원 하에 활발하게 이뤄지다가 90년대에는 정책이 바뀌면서 크게 위축됐다. 그리고 다시 2000년대에 주목을 받았지만, 그때는 이미 일부 연구진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었다. 그 사이에 독일과 일본의 태양에너지 기술이 미국을 능가하게 됐다.
이런 사례는 비단 태양에너지뿐이 아니다. 모든 과학기술이 다 해당한다. 정책에 따라 부침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정치를 원망할 수는 없다. 과학기술계 입장에서는 최대한 연구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정책이 변화해도 남아있는 연구자원을 통해 과학기술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사회=과학기술계와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지만 과학기술계 내에서도 분야별 갈등과 이권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연구비 편성 관련해 의견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과학자들 간에 발생하는 갈등은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는가.
▶리치먼드 회장=나도 한때 과학기술 분야 예산 심의 업무를 한 적이 있어서 그런 상황이 피부에 와 닿는다. 미국의 경우 연구비 관련 갈등은 주로 대형 연구기관과 권위 있는 개인 연구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연구기관은 개인을 험담하며 아무리 권위 있는 과학자라도 혼자서 연구를 하는 것은 어렵다는 현실론을 내세우고, 개인 연구자는 인류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과학기술은 대부분 개인의 성과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런 경우 어느 편도 들어 줄 수가 없다. 두 상황 모두 중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김 이사장=연구기관 또는 연구자들의 갈등은 피라미드 형태의 생태계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바닥을 지탱하는 '풀뿌리 과학'이 넓고 튼튼해야 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 과학기술 생태계가 가장 견고한 미국의 경우도 그런 갈등이 심한데, 하물며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어렵지 않겠는가. 따라서 과학기술의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조성돼야 그런 갈등도 줄어들 수 있다.
▶사회=과학창의재단이나 AAAS는 과학교육 혁신을 주요 어젠다로 설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수학·과학교육의 난이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과, 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한 적절한 난이도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AAAS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 2061'과 과학창의재단이 추진하는 '미래세대 과학교육 표준'은 무엇이고, 두 기관의 협력방안은 무엇인가.
▶리치먼드 회장=미국에서는 '참여형 학습'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수학과 과학교육에 있어서, 어려운 부분을 빼고 학생들이 쉽게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참여형 학습의 핵심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끊임없이 흥미를 불러일으켜 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특히 미국에서 공부하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학생들이 대부분 질문을 별로 하지 않는데, 과학과 수학교육에서 흥미를 키우려면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
▶김 이사장=광복 7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가 이 정도 발전한 것은 과학기술과 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드론, 인공지능 등 숨 가쁘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과학교육이 발전하려면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미와 흥미가 뒤따라와 줘야 하는데, 국내 교육여건에서는 사실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자라나는 학생들이 미래에 살아갈 글로벌적 소양을 기르려면, 지금 창의성 교육을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최근 수학과 과학교육을 둘러싸고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꺼내놓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것도 과학교육의 또 다른 사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AAAS는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지를 발간하고 있다. 저널 발간에서 중요한 점을 무엇인가.
▶리치먼드 회장=사이언스를 포함한 저널 발간은 우리 협회 기능 중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과학저널의 특성상 실험적인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실험정신은 유지하되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저널 사업은 독립성이 중요하다. 최근 저널사업조직의 CEO가 바뀌었는데, 이전 CEO가 독립성 유지에 최선을 다한 만큼, 새로운 CEO도 잘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과거부터 혹시라도 AAAS가 '사이언스' 등 저널 편집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우려해, 두 조직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양쪽을 함께 관할하는 이사회를 두고 있다. 한편 사이언스를 구독하려면 AAAS 회원으로 가입해야 해 이들에 대한 혜택을 줄 수 있는 서비스를 검토하고 있다.
▶사회=AAAS는 미국 내 활동 외에도 글로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와의 협력 계획에 대해 듣고 싶다.
▶리치먼드 회장=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어서 현재는 한국에 대해 배우는 단계라 할 수 있다. 흔히 미국이 과학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미국이 하는 그대로 따라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쉬운데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마다 다른 발전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방한을 기회로 한국의 상황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으려고 한다. 여기서 수집한 데이터의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협력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 이사장=AAAS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오랜 역사를 지닌 민간 차원 과학자단체다. 그 활동영역은 과학기술 정책과 진흥, 대중과의 과학소통, 과학교육, 과학저널 발간 등 우리 재단 사업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앞으로 AAAS와의 협력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공동사업을 통해 '과학외교'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과학창의재단은 AAAS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의 과학자 단체들과도 글로벌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안경애 생활과학부장 naturean@dt.co.kr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김승환 이사장은
과학기술 대중화·확산 앞장
1967년 설립된 한국과학창의재단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지식수준을 높이고, 국민 생활과 사회 전반에 과학기술이 폭넓게 이용될 수 있도록 과학기술 대중화와 과학문화 확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작년 10월 취임한 김승환 이사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론물리학자다.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이면서 한국물리학회 회장이기도 한 김 이사장은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소장,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위원,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수석전문위원 등을 지냈다.
제랄딘 리치먼드 회장은
'사이언스'지 발간 AAAS 수장
미국과학진흥협회(AAAS)는 '과학을 진흥시키자, 사회에 봉사하자(Advancing Science, Serving Society)'라는 슬로건 아래 1948년 창립됐다. 미국 전역에서 활동하는 300여 개 기관과 단체가 참여해 활동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과학기술자협회다.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지를 발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2월부터 AAAS를 이끌고 있는 리치먼드 회장은 미 캔자스주립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화학자로, 아르곤국립연구소 연구위원, 국무부 과학특사, 오레건대 화학물리학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오레건대 화학과 교수로도 재직 중인 그는 미국과 세계 여성과학자들의 활동을 돕는 코치(COACH) 활동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