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설치된 대형이온충돌실험(ALICE) 장치의 실제 모습. CERN 제공
'우주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가졌을까'라는 인류의 근원적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국내 연구진이 참여한 국제공동 연구팀이 밝혀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유인권 부산대 교수(물리학과·사진) 등 국내 6개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 25명이 참여한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 '대형이온충돌실험(알리스·ALICE)'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원자핵끼리 고에너지로 충돌시켜 생성된 반물질의 물리량을 정밀 비교 측정하는 데 성공해, '표준모형'에서 제시된 대칭성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표준모형은 우주의 기본입자들과 구성원리에 대한 이론적인 모형으로, 3쌍의 쿼크, 3쌍의 경입자와 전자기력·강한핵력·약한핵력 등 세 가지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로 우주가 구성돼 있다고 설명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현재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전자·양성자·중성자 등 모든 입자는 반드시 각각의 짝이 되는 '반입자'를 갖고 있다. 반입자는 입자와 모든 것이 똑같지만, 스핀의 방향이 달라 전하만 반대다.
세계 100여개 연구소 소속 1000여명의 연구자로 이뤄진 대형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인 알리스는 CERN에 건설된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인 '대형강입자충돌기(LHC)'에서 1.38조 전자볼트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에너지로 납원자핵(납이온)을 양쪽에서 충돌시키는 실험이다. 이 같은 고에너지 중이온끼리의 충돌은 우주 탄생 직후와 비슷한 초고온, 초고밀도의 극한 환경인 '미니빅뱅'을 일으키며, 이때 다양한 반입자가 입자만큼 풍부하게 발생한다.
이번 연구는 이런 물질 입자와 반물질 입자의 질량과 전하량 등을 측정해 이 둘의 물리적 성질이 같다는 '대칭성'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것이다. 물리학에서 대칭성이란 전하와 공간, 시간이 뒤집혀도 상관없이 물리법칙이 통용되는 것을 말한다. 즉 양전하가 음전하로 바뀌거나, 공간 좌표가 뒤집어져도 물리법칙이 똑같이 적용된다면 대칭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표준모형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알리스 연구진은 중이온 충돌을 통해 '입자-반입자' 짝인 '중수소원자핵-반중수소원자핵'과 '헬륨3원자핵-반헬륨3원자핵'을 생성한 뒤, 이들이 알리스 검출장치의 거대 자기장 내에 남긴 궤적의 휘어진 정도와 입자 고유의 에너지 손실, 비행시간 등을 정밀하게 측정해 입자와 반입자의 질량과 전하량 비율을 정밀 비교했다. 이 실험에는 연간 10PB(페타바이트)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용량의 빅데이터 생산과 분석기술이 필요해 CERN이 위치한 스위스를 비롯한 11개 국가, 140여개 기관의 데이터센터를 전용 회선으로 연결해 데이터를 처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이번 실험에서 약 10%에 해당하는 인프라를 제공했다.
실험 결과 연구진은 데이터 통계와 검출기 시스템 오차를 고려했을 때 물리량의 차이가 없음을 입증했으며, 반입자들이 뭉쳐 반물질 원자핵을 구성한 이후에도 엄밀한 대칭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규명했다. 이는 앞서 전자나 양성자 같은 기본입자의 대칭성을 발견한 연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양성자들과 중성자들의 조합인 원자핵과 반원자핵의 대칭성을 확인한 연구로, 기존 표준모형 이론의 발전은 물론, 표준모형을 넘어선 새로운 이론 개발에도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인권 교수는 "기본입자들뿐 아니라 기본입자들이 모여 만든 원자핵에서도 반물질인 반원자핵과 엄밀한 대칭성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실재하는 우주의 대칭성을 강력히 시사한다"며 "인류의 우주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진보시킨 업적"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물리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