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원자력원 발족…미국서 연구용 원자로 도입 결정 하나밖에 없는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다용도 연구 활용 '메이드 인 코리아' 스마트원자로 '차세대 간판주자' 부상
1959년 7월 서울 홍릉에서 열린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2(TRIGA MARK-Ⅱ)' 기공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첫 삽을 뜨고 있다.
■기술로 이룬 70년 성장신화 (7)초고속 성장 '횃불'된 원자력
우리나라가 원자력을 처음 접한 것은 동족상잔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한국전쟁 직후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하기도 힘든 이때 원자력 기술은 냉전 시대를 대표하는 최강대국인 미국과 소련만 갖고 있었다.
이 시기에 힘없고 가난한 나라 우리나라가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고 민족과 국가의 명운을 되살릴 에너지로 '원자력'을 선택한 것이다. 이 땅에 '제3의 불'인 원자력을 지핀 이래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원자력 기술 자립에 이어 수출 신화를 써가며 '원자력 수혜국'에서 '원자력 공여국'으로, 나아가 '원자력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포화를 겪으면서도 황무지 위에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이란 마천루를 세운 광복 70년의 역사는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을 가능케 한 것은 잘 살아보겠다는, 그래서 자식들에게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전 국민의 뜨거운 의지였다.
밀가루 한 포대와 쌀 한 가마가 아쉬웠던 시절, 국민들의 목숨을 걸고 결정한 베트남전 파병 대가로 받은 돈은 과학기술 연구기관 설립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산업 육성에 쓰였다. 앞서 살아간 이들의 땀과 희생이 잘 사는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됐다. 자본도 산업화 경험도 없던 대한민국은 기술 개발에 목숨을 걸고 선진국을 따라잡으면서 반도체, 조선, 자동차, IT, 철강 등 세계적으로 강한 산업을 일궈냈다. 과학기술을 통해 이뤄낸 광복 70년 성장의 스토리를 조명한다.
1957년 10월 어느 날,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나라 첫 원자력 행정부서인 문교부 원자력과 윤세원 과장을 경무대로 불러들였다. 연희전문학교와 일본 교토대,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배운 젊은 과학자이자 최초의 원자력 행정가인 윤 과장에게 대통령이 대뜸 물었다.
"자네가 원자력을 공부했다지?"
"네, 좀 공부했습니다."
윤 과장은 우리나라 첫 원자력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돼, 미 아르곤국립연구소(ANL) 부설 국제원자력학교에 1년간 유학하고 돌아온 후 문교부 원자력 과장에 부임한 터였다.
이 대통령은 이어 "그럼 우리나라도 원자탄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윤 과장은 잠시 의아해하며 답했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연구를 계속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이 대통령은 결심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됐어. 그럼, 원자력에 대한 계획을 잘 연구해 주게. 정부도 최대한 밀어줄 테니. 연구소를 지을 부지로는 진해도 좋고, 더 좋은 곳이 필요하다면 찾아보게."
◇원자력 '첫 불'을 밝히다=원자력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한 이 대통령은 윤 과장에게 원자력 연구에 본격 착수할 것을 지시했고,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1958년 원자력법이 제정된 데 이어 1959년 대통령 직속 장관급 행정기구인 원자력원이 발족했다. 같은 해 2월 3일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전신인 원자력연구소(현 서울 공릉동 서울공대 4호관)가 설립됐다.
본격적인 원자력 연구개발을 위한 첫걸음으로 '연구용 원자로(연구로)'가 도입됐다. 당시 미국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주창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선언에 따라 연구로를 세계 각국에 보급하고 있었고, 원자력 도입을 적극 원했던 우리나라에도 문호를 열었다.
우리나라는 제너럴아토믹스사의 연구용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투(TRIGA Mark-Ⅱ)'를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도입 비용은 총 73만2000달러. 당시 나라 살림 수준에선 천문학적 금액이지만 절반에 가까운 35만달러는 미국 정부가 무상 원조했고, 나머지 38만2000달러만 우리 정부가 부담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채 되지 않고 외환 사정이 넉넉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결단이었다.
1959년 7월 14일 국내 최초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Ⅱ' 건설 기공식이 열렸고, 3년 만인 1962년 열출력 100㎾의 연구로 1호기가 준공됐다. 열출력이 작은 연구로였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인 연구시설이었다. R&D라는 개념도 채 자리잡지 않은 시절의 일이다.
이어 1972년에는 열출력 2㎿의 연구용 원자로 2호기(트리가 마크-Ⅲ)가 준공됐다. 두 시설은 1995년까지 가동되면서 원자력 기술 개발,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원자력 인력 교육훈련 등에 다양하게 활용돼 원자력 기초기술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무엇보다 연구로 관련 기술 자립의 발판이 돼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자력 설계·건조(1995년), 우리나라 사상 최초 원자력 시스템 일괄 수출로 기록된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건설사업 수주(2009년), 소형 원자로 '스마트(SMART)' 사우디아라비아 수출(2015년) 등의 성과를 거두는 밑바탕이 됐다.
1962년 3월에 준공된 트리가 마크-2. 열출력 10㎾로, 본격적인 연구로 시대를 열었다.
◇'하나밖에 없는 연구로' 자력으로 짓다=1980년 이후 국내 원자력 발전과 연구개발이 활기를 띠면서 연구로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계 역시 원자력 기술의 국산화와 산업적 이용을 위해 고출력 연구로가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지적했다.
이 가운데 원자력연구소는 1973년 캐나다의 열출력 40㎿급 NRX형 재료시험로를 도입·설치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인도가 NRX형 원자로를 사용해 핵실험을 한 이유로 캐나다는 이 노형의 수출을 금지했다. 더욱이 1978년 열린 국제핵연료주기평화회의에서는 NRX형 원자로가 핵확산 우려가 있다고 결론을 내려 1980년대 초 개발이 중단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원자력연구소는 새로운 연구로 건설 논의를 시작해 1983년 수십㎿급 다목적 연구로 건조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했다. 이듬해인 1984년 사업 필요성을 인정받아 1985년부터 30㎿급의 새로운 연구로 건설에 착수했다. 원자력연구소가 모든 책임을 지고 국내 주도로 다목적 연구로 설계·건설에 본격적인 닻을 올린 것이다.
원자력연은 1985년 캐나다 원자력공사(AECL)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다목적 연구로 개념설계를 마치고, 1986년 기본설계까지 완료했다. 1987년 착수한 상세설계는 국내 기술진만 추진하기로 계획했으나, 설계를 검증할 실험장치가 국내에 없는 탓에 AECL과 손잡고 실험을 진행했다.
사업 착수 10년 만인 1995년 연구로를 완공해 최초로 핵연료를 장전, 원자로 성능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쳐 '다목적 연구로 국산화'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동안 '한국다목적연구로(KMRR)'라 불리던 연구로의 이름은 '하나밖에 없는 연구용 원자로'라는 의미를 담아 '하나로(HANARO)'로 바꿔 명명했다.
1996년 하나로는 15㎿ 열출력으로 운전을 시작, 1997년에는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시설을 가동했다. 2004년에는 열출력을 30MW로 올려 운전을 시작했으며, 2010년에는 냉중성자를 생산할 수 있는 '냉중성자 연구시설'과, 원자력발전소의 핵연료 성능을 종합 검증할 수 있는 '핵연료 노내조사시험설비'를 덧붙여, 다목적 연구로의 모습을 갖춰갔다.
올해로 세상에 태어난 지 스무해를 맞은 하나로는 국내 자력 설계·건설·건조·운용되는 유일의 다목적 연구로 명성을 이어가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 다목적 연구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9년에는 하나로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요르단 5㎿급 연구로 건설사업을 처음 수주한 데 이어 지난해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연구로 개선사업을 추가로 따냈다. 이는 하나로를 자력 설계·건설하고, 운영한 경험과 기술력을 높이 평가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5년 2월 국내 자력으로 설계·건조한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HANARO)'의 전경.
◇세상에 없는 '메이드 인 코리아' 원자로 만들다=핵연료 국산화와 한국형 원전 개발 성공으로 원자력 기술 자립을 완성한 원자력연은 또 하나의 담대한 도전에 나섰다. 뼛속부터 우리 기술로 만든 '100% 메이드 인 코리아 원자로' 개발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1997년부터 시작된 도전은 15년 만인 2012년 마침내 결실로 맺어졌다. 바로 '스마트(SMART)' 원자로를 탄생시킨 것이다.
스마트는 기존 원자로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만능 원자로'다. 우선 안전성이 뛰어나다. 원자로를 이루는 주요 기기들을 대형 배관으로 연결한 지금의 원자로와 달리 증기발생기, 가압기, 원자로 냉각재펌프 등 원자로 계통을 구성하는 주요 기기를 하나의 압력용기 안에 넣어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일체형 소형 원자로다. 덕분에 대형 배관이 깨져 발생하는 사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고, 주요 기기를 모듈 형태로 만들어 조립이나 조립과정을 최소화함으로써 건설 공기가 획기적으로 단축된다.
다목적 원자로 기능도 갖추고 있다. 전력 생산뿐 아니라 바닷물을 민물로 바꾸는 해수담수화나 지역난방, 공정열 공급 등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해수담수화용으로 건설하면 스마트 1기로 인구 10만명 규모의 도시에 9만㎾의 전기와 하루 4만톤의 물을 동시에 공급할 수 있어 중동 등 물부족 국가에겐 '오아시스' 같은 원자로다.
대형 상용원전을 짓기에 경제력이 부족하거나 국가 전체 전력량이 많지 않은 작은 나라에 적합하다. 스마트의 전기출력은 대형 원전(1기당 1000㎿ 이상)의 10분의 1 수준인 100㎿로 작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대형 원전에서 벗어나 소형 원전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주요 원자력 선진국들은 경쟁적으로 소형 원전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2012년 표준설계인가를 세계 최초로 획득해 경쟁국들보다 한발 앞서 뛰고 있다.
스마트는 새롭게 열릴 소형 원전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의 '차세대 간판주자'로 전면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