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영 IT정보화부 차장
심화영 IT정보화부 차장

유대인의 지혜와 처세를 담은 탈무드 민화 중 한 이야기다. 타지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에게 어느 날 재력가였던 부친의 사망소식을 노예가 전한다. 주인이 오직 한 가지만 제외하고 전 재산을 자신에게 물려줬다고 노예는 말한다. 이에 아들은 한 가지 재산으로 노예를 택한다. 그리고 법에 따라 노예의 모든 재산은 주인인 그에게 귀속된다. 이는 아버지의 사랑에 관한 내용이나, 한편 최상위계급이 모든 것을 가지는 지배구조의 본질을 보여준다.

최근 국내 그룹사의 지배구조재편이 가속화되면서 그룹 전산실 태생인 IT서비스 회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그룹 계열 IT서비스 기업들이 주력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한 과정에서 핵심 주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 중 상장사들은 '지배구조수혜주'로 불린다. 삼성SDS는 이재용 부회장 등 개인대주주 지분이 19.06%로 삼성그룹 중 가장 높다. 삼성SDS 기업가치 상승이 지배구조 재편에 유리한 카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SK그룹도 마찬가지다. SK주식회사(구 SK C&C)가 보유한 IT서비스 부문을 분할, SK텔레콤이 보유한 SK하이닉스 지분과 맞바꿔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총수 일가 지분 100% 회사인 한화그룹 IT서비스기업 한화S&C는 삼성그룹의 화학 계열사 인수에 한화에너지(한화S&C 100% 자회사)가 참여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주체로 떠올랐다. 한화S&C의 몸집을 키워 한화와 합병할 것이란 가정이 나온다.

이외에도 다수 IT서비스 업체들은 내부적으로는 그룹사 조직재편의 중심에 서 있다. 대기업 오너들이 자녀들에게 부와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IT서비스기업이 활용된다. 이런 '지배구조수혜주'라는 타이틀은 주식시장에선 약발이 먹힌다. 오너의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결단으로 상장도, 합병도 빠르게 이뤄지며 몸값도 높아진다.

그러나 IT기업에게 지배구조수혜라는 '약'은 장기적으로는 '독(리스크)'이다. 총수가 지분을 보유한 IT서비스기업은 '상속자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경영 판단은 무엇인가'가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총수의 막강한 지분구조 하에서 캡티브마켓(계열사물량)이 늘면서 IT서비스기업들은 일감몰아주기 업종으로 몰렸다. 상호출자제한집단기업은 공공정보화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결과를 맞기도 했다. 결국 지배구조수혜라는 약이 기업을 죽인 꼴이다.

현재 IT서비스업계는 저성장기가 지속된 침체기다. 그룹 내에서 나름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사업구조 개편 등 변신을 꾀하고 있다. 덩치를 키우기 위해 사업을 다각화하며 탈(脫)IT서비스도 가속화했다. 그러나 결국 총수지분율제한 및 일감몰아주기규제와 함께 주 사업영역인 시스템통합(SI)을 공공시장에서 할 수 없게 됐고, 이는 기업 내부적으로 조직개편과 인력재편(구조조정)을 불러왔다.

IT서비스기업들은 정부의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수 주요 IT서비스기업이 그룹 지배구조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를 벗어나긴 어렵다. 이종사업에 앞다퉈 진출한 IT서비스기업들은 이제 서로간 비교가 의미 없을 정도로 사업영역이 다양화됐다. '순수한 SI 대기업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란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SI업이 사양길이라면 변신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SW기업과 공생하며 글로벌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과도기는 아닌지 먼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IT서비스기업이 지배구조재편 이후 토사구팽 당하지 않고, 산업화의 기반을 닦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IT의 저력을 발휘할 날이 오길 고대한다.

심화영 IT정보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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