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입소문…금융까지 확산 아마존·일본 기업도 '공간' 차지 보안 최고 … 현대판 '대나무숲'
직장인 익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블라인드'는 2013년 말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현재 국내 500여 업체와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요 업체 직원들의 소통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최근 블라인드가 시작한 LG, 포스코 등 그룹사 직원들을 위한 소통공간 '라운지' 서비스 이미지. 팀블라인드 제공
(16) 팀블라인드
지난해 말 여론을 들끓게 한 일명 '땅콩 회항'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 전 이미 이 사실을 접한 이들이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을 목격한 항공사 직원이 사내 익명 게시판에 이날 있었던 이야기를 올렸고, 이 글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언론에까지 소식이 전달된 것이다. 직원은 이 민감한 사안을 왜 게시판에 올려 공유했던 것일까. 결과론적으론 내용이 외부인에 전달되면서 공개됐지만, 사실 이 게시판은 회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게 아니다. 항공사 직원이 땅콩 회항 사건 내용을 털어놓은 곳은 다름 아닌 '블라인드'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이었다.
누구나 직장 생활 중 마음 터놓고 얘기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혹여 말이 새어 나갈까 걱정돼 입을 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인에게도 때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얘기할 '대나무 숲' 이 필요하다.
블라인드를 운영하고 있는 정영준 팀블라인드 공동 대표 역시 이 같은 직장인의 애환을 십분 이해하고, 앱 서비스를 기획했다고 했다. 정 대표는 "하루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곳이 회사고 얘기할 내용도 대부분 회사 얘기지만, 동료나 상사 눈치를 보느라 정작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며 "그나마 예전에는 기업이 사내 익명 게시판을 운영했지만, 이 게시판에 회사 관련 불미스런 글이 올라오면 이 공간을 폐쇄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공간을 대신할 곳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3년 12월 처음 세상에 나온 블라인드는 대한항공 사건 이전부터 직장인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서비스를 가장 먼저 이용한 곳은 앱에 익숙한 정보기술(IT) 업종 기업 직원들이었다. 국내 1위 포털 업체인 네이버를 시작으로 티켓몬스터, SK플래닛 등 서울 강남과 경기도 판교, 분당에 위치한 IT기업이 하나 둘 블라인드 속으로 들어갔다. 1년 만에 네이버 직원 중 80% 가량, 티켓몬스터 역시 80% 이상 직원이 블라인드에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지금은 가장 보수적이라 꼽히는 금융, 조선, 건설 업종 등 대부분 기업 직원들이 블라인드에 자신들만의 대화 공간을 만들고 있다. 1년 만에 서비스는 국내 500여 기업의 비밀 공간으로 거듭났다.
직장인 전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블라인드'가 현대판 대나무 숲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를 것이란 '익명성'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회사 역시 익명성 보장과 시스템 보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정 대표는 "블라인드를 이용하는 업체 중 국내 보안 1위 업체인 안랩도 있다"며 "안랩 직원도 믿고 사용할 정도라면 익명성이나 보안성을 인정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사는 시스템 로그인 이후 회사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의 출처를 알아볼 수 없도록 조치하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고, 특허도 출원했다.
블라인드는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 주요 회사 직장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대나무 숲'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미국 최대 직장인 SNS '링크드인'을 비롯해 최근에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도 블라인드에 합류했다. 일본 대표 종합상사인 '이토추 상사'와 '미츠비씨 상사' 등 일본 종합상사도 블라인드에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회사는 최근 업종별 라운지를 비롯해 SK, 현대 등 그룹사 라운지도 별도로 만드는 등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아가 세계 직장인을 하나의 앱으로 연결하겠다는 게 회사의 비전이다.
초반 블라인드를 기획하고 만든 정영준, 문성욱 공동대표는 네이버와 티켓몬스터에서 서비스를 기획, 개발하는 일을 맡았던 IT분야 전문가들이다. 정 대표는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벤처 업계는 정말 변화 무쌍하게 변하는 세상에 맨주먹으로 뛰어드는 곳"이라며 "무조건 좋은 사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과 함께 일을 시작해야 치열한 벤처 생태계에서 함께 이겨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