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집약산업 수출 성장 한계 R & D 수준 향상 기폭제 역할 안보이슈 방위산업 괄목 성장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대덕연구단지를 시찰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1970년대 초 선진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오일쇼크 등 국제 환경 변화로 한국경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노동집약산업 중심의 공산품으로는 더 이상 수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정부는 '중화학공업화'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택했다. 정부는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크고 경제 전반에 대한 성장 기여도가 높은 철강,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 화학 등 6대 중화학공업 분야를 전략산업으로 선정해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중화학공업화를 위해선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필요했지만, 당시 국공립연구소나 대학 연구소 등은 기술수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기업의 연구개발(R&D) 활동 역시 본격적인 산업기술을 개발하기엔 너무 영세한 상태였다. 정부는 시급히 요구되는 기술과 자본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확보하도록 하는 한편, 민간기업의 기술 확보를 지원하기 위한 전략으로 산업 부문별로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를 설립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1973년에는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메카'로 불리는 대덕연구단지 건설계획이 수립됐다. 대덕단지는 1970년대 중반 설립된 10여 개 전문연구소를 통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함께 우리나라 과학기술 R&D 활동의 거점이 됐다.
1970년대 연이어 설립된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은 총 19개에 달했고, 이들 기관은 사실상 이 시기 우리나라의 R&D 활동을 거의 주도했다. 특히 출연연은 해외의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이 국내로 돌아오는 주된 통로가 돼 국내의 전반적인 연구 수준을 높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70년대에는 특히 포항제철소와 경부고속도로 건설, 자동차, 조선 산업 육성 등 산업기술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KIST가 1973년 개발한 최초의 국산 컴퓨터 '세종 1호'와 1977년 개발한 '폴리에스터 필름'도 이 시기 산업기술 R&D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원자력기술 분야는 1970년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 도입이 결정되면서 기초연구를 넘어 본격적인 기술연구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1978년에는 고리 원전 1호기가 준공됨으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22번째로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한 나라가 됐다.
안보 이슈로 방위산업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국방과학기술 분야도 괄목할 성장을 거뒀다. 국방과학연구소 설립과 함께 군·산·학·연의 협동연구개발체제가 구축되면서 빠른 속도로 기술 개발이 추진됐고, 기본 병기 개발부터 1987년 세계 7번째로 유도탄 시험발사까지 성공해 한 차원 높은 단계에 진입하게 됐다.
이 시기 한국이 '보릿고개'로 표현되는 식량난을 극복하고 쌀 자급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통일벼' 개발이 큰 몫을 했다. 농촌진흥청이 1971년 개발한 통일벼는 한국인들이 주식으로 삼고 있는 '자포니카'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재배하는 '인디카'의 잡종으로,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통일벼 재배면적이 크게 확대된 1977년에는 쌀 생산량이 수요량을 앞질렀으며, 이후 다른 농작물의 품종개발과 재배기술 발전에 토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