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7월 14일 서울 원자로 기공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이 '트리가 마크 2(TRIGA Mark-II)' 원자로를 시찰하고 있다. 트리가 마크 2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로, 1995년 가동이 중단될 때까지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과 중성자 관련 연구 등 여러 분야에 다양하게 활용돼 우리나라 원자력 기초 기술 발전에 공헌했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는 중앙공업연구소 등 소수의 국가연구기관이 연구의 명맥을 유지했지만, 대부분 부족한 연구인력과 자원으로 제자리걸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1950년대까지도 과학기술 진흥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이나 이를 지원하는 통합된 행정체제가 없어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특별한 사업이 이뤄지지 못했는데, 이 가운데 1959년 '원자력연구소'가 설립돼 과학기술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원자력연구소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목표로 1956년 9월 20일 '세계원자력기구'가 설립된 국제상황을 배경으로, 미국과의 원자력협정에 따라 35만달러의 원자로 구입비를 지원받아 설립됐다. 이를 통해 1962년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로 '트리가 마크-2(TRIGA MarkⅡ)'가 국내에 가동돼 우리나라도 원자력 분야의 기초연구를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1960년대 초반까지 한국경제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며, 전반적으로 매우 낙후된 상태였다. 공장 설계에서부터 생산기술과 품질관리에 이르는 모든 산업기술을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부가 산업기술 진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만 했다.
1961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한 정부는 비료, 시멘트, 합판, 섬유, 전력 등의 분야가 주요 전략산업 분야로 선정했고, 산업 육성에 필요한 기술은 선진국으로부터 들여온 다음 소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를 통해 60년대 초 시멘트 소성기술(쌍용양회), 화약 제조기술(한국화약), 화학비료 생산기술(충주비료), 나이론 생산기술(코오롱), 수동식 선반 제작기술(화천기공), 국내 최초 라디오(금성사) 등의 산업 기술들이 개발됐다.
이를 계기로 과학기술을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추진력의 하나로 인식한 정부는 산업계 기술개발을 지원할 종합연구기관 설립을 시도했다. 때마침 1965년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측이 연구소 설립 지원을 제안하면서 급물살을 탄 결과, 1966년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 종합연구기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출범했다.
1966년 2월 10일 '한국의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립'에 관한 한·미 두 나라 대통령의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기술 연구소로 출범한 KIST는 49년간 국가 과학연구를 견인하며 국가 발전에 주요한 중심축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많은 정부출연연구소들을 탄생시켜 한국 과학기술의 모태이자 기준이 됐다.
KIST는 한국과 미국의 재정지원으로 설립됐지만, 자율적인 운영을 위해 재단법인이라는 법적 형태를 갖췄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설립자로 이름을 올리며 적극적인 후원에 나선 KIST는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산업기술 연구활동'을 모토로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시작했다. 연구소 완공 후 첫해인 1970년 160건의 연구계약과 4억7000만원의 연구계약금 수취를 달성한 KIST는 우리나라 연구개발(R&D) 풍토를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산업계와 정부로부터 연구를 위탁받고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운영하는 계약연구체제를 통해 연구자는 자신의 선호가 아닌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요구에 부응해야 했고, 산업계는 자신이 투자한 R&D 결과를 실제 생산에 활용함으로써 R&D 투자의 필요성과 가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KIST 설립 이후 1967년 1월 '과학기술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를 근거로 같은 해 4월 최초의 과학기술 전담부처인 '과학기술처'가 문을 열며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과학기술 시대'를 맞이했다. 당시 개발도상국 중 각료급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갖춘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과학기술처의 설립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 형성 과정에 한 획을 긋는 전환점으로, 과학기술처 발족일인 4월 21일은 1968년부터 '과학의 날'로 제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