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장면 #1: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던 윌리엄 리는 밤새 침침한 불빛 아래 뜨개질을 하던 어머니와 누이를 보며 직물 생산 기계화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리는 오로지 기계에 대한 생각에 몰입하며 기계를 만드는 데 몸과 마음을 바쳤고, 마침내 양말짜는 편물 기계를 발명하였다. 리의 특허 신청에 대해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의 답변은 이렇다. "리 명장의 의도는 높이 사겠소. 허나 그대의 발명품이 나의 가엾은 백성에게 무슨 짓을 할지 생각해 보오. 이런 기계를 만들면 백성이 일거리를 모조리 빼앗기고 거지가 될 게 불을 보듯 뻔하지 않소."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등장하는 삽화이다. 지금으로부터 5백여년 전의 일이다.

장면 #2: "운행하는 자동차의 앞에는 붉은 기를 가지고 차량을 선도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붉은 기를 가진 사람은 걷는 속도를 지키고 기수나 말에게 자동차의 접근을 예고해야 한다."

18세기말 당시 지배적이었던 마차 산업의 도태를 우려하여 자동차 운행을 제한한 적기조례(Red Flag Act)이다. 결말은 자명하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임에도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독일이나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에 비해 크게 뒤처지게 되었다.

장면 #3: 카카오택시 누적 호출 횟수 석 달만에 5백만 돌파. 회원 가입 기사 수 11만. 4월 기준 월 서비스 이용자는 92만 명.

카카오택시의 성공은 카풀 서비스를 상업화한 기업인 우버(Uber)의 사업 아이디어를 한국식으로 변용한 결과이다.

우버는 2013년 8월 한국 시장 진출을 선언한 후, 택시업계의 반발과 국토부, 서울시의 인가 불허로 1년 반만에 서비스 중단을 결정하였다. 우버의 진출은 기존 택시업계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되었으나, 불만족스러운 택시 서비스를 누가 감수해야 하는가와 서울시민의 71%가 모르고 83%가 이용 경험이 없다는 유명무실한 콜택시 문제는 부각되지 않았다.

카카오택시의 성공을 목격하며 장면 #1과 장면 #2를 연상하는 것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다 못해 우습기 짝이 없는 과거의 사례들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무원 연금 개혁, 재벌 계열사의 합병을 둘러싼 표 대결, 고용 유연성 제고를 위한 노동 개혁, 최근 펼쳐진 일련의 사건도 흐름은 유사하다. 변화를 시도하는 쪽이 있고 이를 거부하는 쪽이 있다. 한 쪽은 변화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다른 한 쪽은 변화에 따른 부담을 내세운다. 그러나 다음 장면 #4는 변화의 지체가 공짜가 아님을 환기시킨다. 물론 그 대가를 누가 지불하는지는 대개 분명히 언급되지 않는다.

장면 #4: 선전의 창업 인큐베이팅 시스템 "시드 스튜디오(Seed Studio)"는 특별하다. 이 곳에서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오면 각종 형식의 서비스와 인재들을 찾아서 어떤 시제품이든 완성한다고 말한다. 전 직원의 평균 연령은 26세. 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인력도 수두룩하다. 이들이 제품개발, 생산, 유통, 투자자 소개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선전을 취재한 어느 방송사의 르뽀 기사이다. 변화를 수용하든 변화를 거부하든 그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5백년 전, 2백년 전의 역사가 알려 주고, 우버가 떠난 뒤 그 자리를 대체한 카카오택시의 사례가 웅변하듯 필요는 변화를 요구하고, 필연적인 변화는 거스를 방법이 없다. 설사 거스른다 한들 그 결과는 독일, 프랑스 자동차 산업에 내몰린 영국의 자동차 산업의 운명이 될 뿐이다. 그 비용은 누가 치르는가? 카카오택시의 성공은 이런 물음을 제기한다.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