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과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대출 등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묶여 있거나 갚아야 할 돈이 9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8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전세자금대출 안내문이 붙혀져 있다. 유동일기자 eddieyou@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과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대출 등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묶여 있거나 갚아야 할 돈이 9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될 경우 한국경제의 진짜 뇌관은 집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8일 한국은행의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가계부채는 1099조3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예금취급기관의 주담대는 469조9000억원인데, 여기에 450조원으로 추산되는 전세보증금을 더하면 919조9000억원으로 늘어난다. 국민들이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묶여 있거나 갚아야 할 돈이 920조원에 육박한다는 뜻이다. 경제계에서는 450조원의 전세보증금 중 절반가량이 대출로 충당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전셋값을 마련하기 위해 받은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등을 포함한 예금취급기관의 기타대출 누적액은 3월 말 기준 285조30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최근 주담대를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관리 대책을 내놓았지만, 전세 대출을 억제할 수 있는 대책은 크게 포함하지 않았다. 기존 2금융권에서 받은 고금리 전세 대출을 시중은행의 저금리 상품으로 바꿔주는 '징검다리 전세보증'을 확대하는 안이 전부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담보가치가 떨어지는 전세대출의 금리가 주담대보다 더 많이 치솟고, 대출이 까다로워져 경제 전반과 국민 생활에 불안을 키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날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전세의 월세화와 가계 자산부채 구조의 변화' 보고서를 보면 전세 세입자들이 아예 주택매입에 나서거나 임대인이 전세 보증금을 갚아주는 과정에서 각각 대출에 의존해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셋값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지역은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전세가율)이 70%에 도달했다. 매매가가 1억원인 집의 전셋값이 7000만원에 달하는 셈이다.
또 임대인들도 전세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내주면서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통계청의 2014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대보증금 부채가 있는 가구 가운데 보증금이 금융자산을 초과하는 경우가 전체의 52.8%에 달했다. 세입자가 이사 갈 때 임대인 중 절반 이상이 대출을 받아서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휘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전세 보증금이 앞으로 가계부채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