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천문학의 자존심… 사회문화까지 영향
'행성' 지위 잃었지만 과학적 가치는 분명



'행성'에서 '왜소행성'으로 지위가 격하되는 수모를 겪은 명왕성이 화려하게 우리 앞에 돌아왔다. 2006년 1월에 지구를 떠나 9년 6개월 동안 무려 56억7000만㎞를 날아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뉴호라이즌스호가 명왕성을 스쳐 지나가면서 보내 준 몇 장의 사진 덕분이다. 뉴호라이즌스호는 1970년대 초에 출발한 파이오니어 10·11호의 뒤를 이어 태양계의 끝자락에 있는 카이퍼벨트 속으로 끝없는 여행을 계속한다.

명왕성은 미국의 자존심이 걸린 별이다. 이야기는 보스턴의 부호 퍼시발 로웰에서부터 시작된다. 1883년 미국 사절단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를 다녀간 후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책을 내기도 했던 바로 그 로웰이다. 그가 1894년 애리조나 플래그스테이션에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천문대를 세웠다. 화성 표면에서 화성인이 건설한 운하의 증거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당초 목표였다. 그런데 1906년부터는 해왕성의 공전궤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했던 '행성X'를 찾기 시작했다. 로웰은 자신의 황당한 꿈에 실망한 채 1916년 사망했다.

결국 명왕성은 의 공로는 캔자스 출신의 무명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에게 돌아갔다발견됐다. 로웰의 유산에 대해 유족과의 분쟁에 휘말렸던 로웰천문대가 다시 본격적으로 천문관측을 시작한 것은 1929년이었다. 당시 천문대장이던 베스토 슬리퍼는 인상적인 천문도를 그리는 재주를 가진 23세의 톰보에게 행성X를 찾는 일을 맡겼다. 그런데 뜻밖에도 톰보는 천문대의 망원경으로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비교하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했고, 1년 만인 1930년 3월 명왕성의 존재를 밝혀냄으로써 행성X 논란을 잠재우는 성과를 거두었다. 냈다.

미국 사회는 무명의 과학자가 밝혀낸 새로운 행성에 환호했다.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을 찾아내게 해준 로웰의 명성도 되살아났다. '플루토'(명왕성)라는 이름도 첫 두 글자가 퍼시발 로웰을 연상시킨다는 생각에서 선택한 것이었다.월트 디즈니는 미키마우스에 '플루토'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등장시켰고, 1941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물리학자 글렌 시보그는 자신들이 인공적으로 합성한 원소를 '플루토늄'이라고 불렀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1789년에 발견된 우라늄의 이름도 천왕성(Uranus)에서 유래된 것이고, 1940년에 발견된 넵투늄의 이름도 해왕성(Neptune)에서 유래된 것이다.

명왕성의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명왕성이 지구와 비슷한 크기일 것으로 추정했다.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에서 나타나는 불규칙성이 근거였다.

그러나 그런 추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명왕성이 생각보다 훨씬 작다는 증거가 속속 확인됐기 때문이다. 결국 1978년에 명왕성이 자신보다 훨씬 큰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려졌다. 오늘날 명왕성은 수성보다 훨씬 더 작고 차가운 얼음 덩어리로 확인됐다.

2006년 9월에는 국제천문연맹(IAU)이 명왕성을 카이퍼벨트의 왜소행성으로 격하시켜 버렸다. 명왕성 발견을 자랑스러워하던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렇다고 명왕성의 과학적 가치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늘날 명왕성은 해왕성 바깥을 차지하고 있는 카이퍼 벨트에서 최초로 발견된 왜소행성으로 여전히 분명한 과학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천문학적 분류는 바뀌었지만 명왕성의 존재 가치는 여전하다. 미국이 명왕성에 대해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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