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이 이달 시범사업을 위한 정부 발주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킥오프' 신호를 알릴 예정이다. 그러나 재난안전통신망 시범사업을 위한 정보화전략계획(ISP) 자체가 부실한 데다, 이 시범사업 ISP를 본 사업 ISP에 그대로 적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제가 일파만파 커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시범사업 ISP에 따르면 국가재난망은 국가가 직접 구축, 운영하는 '자가망'이다. 다만 전국 망을 구축해야 하고, 재난이라는 특수 환경에서도 통신망이 살아있도록 하기 위해 건물, 터널, 지하, 기타 지역 등 망 구축이 어려운 곳은 기존 이동통신 상용망과 연계해 구축하는 것으로 돼 있다. ISP에 따라 안전처가 추산한 총 재난망 구축사업비는 1조165억원이고, 구축 후 10년간 운영 유지비용으로 7728억원 등 총 1조7893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계산됐다.

그러나 전국 자가망 구축 비용을 아끼기 위한 이동통신 상용망 연계 방안이 오히려 전체 재난망 사업비를 수천억원 더 증가시키고, 구축 시간을 더 걸리게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통신업계 전문가는 이동통신망의 경우, 음영지역에 중계기를 수십 만개 설치해 이를 해소하고 있는데, 건물 내부나 지하주차장, 터널 등이 대표적인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재난망과 이동통신 상용망을 연계한다면 재난망을 상용망 중계기에 연결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비용 또한 크게 증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ISP의 내용 중에는 '음영지역 해소비용'이라는 명목으로 건물과 지하 등 수백 곳 정도만 중계기를 연계하는 방안이 명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국 재난망을 구축할 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중계기 연계 방안은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지 않고, 수천억원에 달할 비용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재난망과 이통망 주파수 연계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국내 이동통신망의 주파수는 3G의 경우 2.1㎓, 4G LTE의 경우 1.8㎓ 등의 대역으로 구축돼 있다. 재난망의 주파수 대역은 700㎒로 이통망과 다르기 때문에 중계기 연계 과정에서도 주파수 변환을 위한 '핸드오버'라는 별도 장치가 구축돼야 하는데, 이 또한 비용과 시간을 증가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특히 더 큰 문제는 이런 맹점을 지니고 있는 시범사업 ISP를 본 사업 ISP에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보통 시범사업에서 여러 실험을 진행한 후, 검증과 수정을 거쳐 본사업을 위한 별도의 ISP를 마련, 효과적 구축사업을 추진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잘 못된 ISP로 재난망 본사업 단추를 꿴다면, 재난망 사업이 차질을 빚을 것은 '명약관화'다. 이대로 사업을 추진하면 조 단위의 국민 세금을 투입하고도, 정작 재난 시엔 통신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난망 사업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을 계기로 구축 논의가 시작된 이래 무려 12년간이나 표류해온 사업이다. 지난해 세월호라는 국민적 대재앙을 겪으면서 재난안전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온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잘 못된 계획(ISP)에 따라 사업을 강행한다면 국민적 사업은 다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재난망 본사업 ISP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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