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했다. 합병 추진 소식이 전해진 이후 한 달이 넘도록 경제계를 뒤흔든 이 이슈는 우리 경제에 시스템 전반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삼성그룹은 '통합 삼성물산'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킬 수 있게 돼 그룹 지배구조의 단순화를 통한 이재용 후계구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 시장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그동안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후계구도의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위기의 처한 삼성그룹이 큰 고비를 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삼성물산 합병은 적지 않은 교훈을 남겼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주주가치 제고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점에서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음은 분명하다. 합병 과정에서 차익을 노린 투기자본의 공격에 대처하면서 주주 가치의 제고가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삼성물산 합병은 국제구제금융(IMF)체제 이후 취약해진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남긴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혹자들의 얘기처럼 언제든 제2, 제3의 엘리엇이 나와 우리 기업을 사냥감으로 삼을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 96곳 중 외국인 보유 지분율이 오니 일가나 최대주주 등이 보유한 지분보다 높은 기업은 전체의 17%나 된다. 이 중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는 우리 경제를 좌우할 수 있는 굵직한 글로벌 기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번 삼성물산 합병은 이 같은 문제점을 우리 기업이나 정책 당국이 체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전문가들의 얘기처럼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해외 투기자본에 관대해진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IMF 체제 당시는 사실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을 정책 당국은 인식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외국인의 국내 기업 주식취득 한도 폐지와 의무공개매수 제도 폐지 등으로 인해 해외 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이에 따라 신주인수선택권 도입 등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신주인수선택권의 경우 주주총회나 이사회 등을 통해 신주발행을 결정해 우호 세력에게 지분을 양도할 수 있는 제도로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는 이미 도입했다. 순환출자나 상호출자 등으로 얽힌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정보 공개 수준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국가기관이 민간기업의 지배구조를 분석해 공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한 상황으로, 적에게 보물지도를 그대로 갖다 바치는 셈이다.

물론 우리 기업들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투명하지 못한 의사결정 구조 등은 늘 지적받아온 사항이다. 소액주주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점도 사실이다. 이번 삼성물산 합병 과정을 지켜본 기업의 오너들은 뜨끔했을 것이다.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기업 나름대로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투기자본의 화살촉에 노출돼있는 우리 기업들을 보호할 방패 하나 정도는 제대로 갖춰야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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