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필요한 기술은 기업 스스로가 확보해야
정부 주도의 상업화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
R&D 바우처 제도 통한 기술거래시장 활성화 기대

황석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황석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올해 과학기술계 최대 화두는 정부 연구개발(R&D) 혁신이다. 그동안의 여러 논의를 거쳐 지난 6월 15일 '정부 연구개발 혁신방안 세부 실행계획'이 확정·발표됐다. 거기에 R&D 바우처 제도가 포함됐다.

왜 R&D 바우처 제도인가.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R&D의 핵심 문제 가운데 하나는 본질적으로 응용개발 R&D 서비스 일체를 정부가 구매한다는 점이다. 물론 일반적인 관점은 정부가 연구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자금을 공급한다'는 것이지만, 이러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정부 부처와 산하 관리기관이 공급자인 정부출연연구기관, 대학, 기업으로부터 R&D 서비스를 구매해온 것 아닌가. 문제는 R&D 서비스 구매 의사결정의 최상위 주체인 부처와 산하 관리기관들은 구매한 R&D 서비스(정확히는 R&D 수행을 통해 창출된 지식)를 써먹을 데가 없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정부는 산하 관리기관과 출연연구기관 등에 구매한 R&D 서비스의 '사용'을 위탁하고 기업이 '사용'할 경우 '기술료'를 수령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정부가 R&D 서비스를 구매하는 구조, 즉 연구개발 투자에 관한 세부 의사결정이 정부에 의해 이뤄지는 구조에서는 개발된 기술의 상업화·실용화는 애초에 기대 난망 아닐까. 기술의 사용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은 기업 스스로 필요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출연연이나 대학에서 구매할 수도 있고 자체 개발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근본적으로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어떻게 확보할지의 의사결정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하는 것이 맞다. 현재처럼 정부 부처와 그 산하 관리기관 입맛대로 R&D 사업 수행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기업이 진짜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과는 언제까지나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기술이전 및 사업화 촉진 명목으로 산학협력단, 기술지주회사, 기술사업화전담조직(TLO), 특구 등 많은 제도와 사업이 만들어졌다. 적어도 제도나 사업이 모자라서 기술이전 및 사업화 실적이 미흡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훌륭한 성과를 내는 곳도 있겠으나 전반적으로 그동안의 기술이전 및 사업화 실적이 부진하다면 더 많은 중개조직을 만들고 더 많은 '기술이전 및 사업화 지원' 사업을 만드는 전통적인 접근과 전혀 다른 발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편, 상용화 기술은 시장과 기업에 맡기고 공공부문인 출연연과 대학은 기초원천 및 공공 기술에 전념하게 한다는 식의 시장 만능주의 역시 답은 아닐 것이다. 외부성 때문에 시장과 기업에게만 전적으로 맡겨 놓을 경우 경제 전체에 필요한 만큼 연구개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대다수 영세 중소기업은 불확실성이 큰 기술개발에 자원을 투입할 여력도 없다. 따라서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정부 개입, 즉 포괄적 정부 지원은 필요하다.

정부가 포괄적으로 지원하되 세부 의사결정은 기업이 담당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R&D 바우처 제도가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R&D 바우처 제도의 기본 구조는 기업에 연구개발 자금을 출연금으로 지원하되, 해당 출연금을 대학이나 출연연의 R&D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와 산하 전문기관에 의한 '사업 선정' 방식을 폐기하고 기업이 자체 수요와 판단에 따라 최적 파트너를 출연연, 대학 등 R&D 공급자 가운데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어느 제도나 마찬가지로 여러 문제가 등장할 것이다. 무엇보다 출연연이 환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민간 수탁을 늘려야 하는 출연연은 기업이 확보한 R&D 바우처를 수주하기 위해 을(乙)의 입장에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출연연에 긍정적인 점도 있다. 출연연에 '생돈'을 내고 R&D 서비스를 구매할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별도의 수단이 없다면 출연연의 민간 수탁고 증대는 사실상 불가능한데, R&D 바우처가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R&D 바우처와 민간 수탁고 증대 정책이 기술거래 시장 형성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황석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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