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개인마다 다양한 형태만이 있을 뿐 행복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행복이란 자기완성, 존재성취의 부산물로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쉽게 잡히지 않으며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 상대적이어서 정답이 없다. 현대인들이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건강과 돈이다. 건강해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오래 살 수 있으며 고통 없이 아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건강만 챙기면서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은 죽어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건강하고 돈이 많아도 행복할 수가 없다.
이탈리아의 화가·조각가·음악가·과학자로 르네상스 시대 한 획을 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잘 지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이루게 하는 것처럼 잘 보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하루를 가장 잘 보내는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좋은 사람에 대해 쓴 글을 읽고 무척 공감이 갔다. '항상 겸손하고 인사성이 바르다', '옳고 그름의 가부를 말할 줄 알며 손수 차 한 잔을 탈 줄 아는 사람' 등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 장문의 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글은 금전적인 부분과 건강이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듯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돈이나 건강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돈과 건강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물질적 행복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물질로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다. 오히려 육체적 쾌락만을 좇으며 나쁜 일을 할 때 더 많은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영국의 정치가 존 러벅은 "악하고 방탕한 삶이 아닌 지혜롭고 선한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이며 죄악이야말로 자신을 망치는 것"이라고 행복한 삶을 정의했다. 행복은 불행 속에서도 존재한다. 돈과 건강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 작지만 함께 나누는 마음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이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국내의 10분의 1 수준인 작은 국가 부탄 사람들은 오히려 GNH(국내 총 행복)가 높다는 보고가 있다. 이것은 행복이 절대적이기보다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궁극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훌륭하다고 느끼는데 찾을 수 있다. 철학자 알랭에 의하면 이기주의자는 행복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행복은 남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기주의자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 행복은 행복해지려는 의지를 갖춘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 이타주의자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힘쓰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베푸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행복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에 의해 보답을 받아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기뻐하며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살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진실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동호 두리이비인후과 수원호매실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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