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곡 고민없이 무료청취 … 월 청취자 90만명

(2) 비트패킹컴퍼니

2014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한 호텔 방.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인 'CES'가 열리는 시기라 호텔 안팎으로 사람들이 줄기차게 오고 가던 그 순간. 한국에서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한 벤처 대표는 절망에 빠진 채 호텔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미국으로 오자마자, 믿었던 직원 두 명은 회사를 나가겠다고 통보했다. 출시했던 서비스가 참패하면서 회사는 곧 문을 닫게 생겼다. '왜 CES에 왔는지', '이제 회사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그의 귀에 음악이 들렸다. 호텔 방에 무심코 켜뒀던 한 사이트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던 재즈 음악. 그의 눈이 번쩍였다. '이 사이트는 뭐지?', '왜 음악을 계속 틀어주는 거지? ' 그가 접한 음악사이트는 '판도라'. 미국의 대표적인 음원 스트리밍(끊김 없이 음원 재생) 서비스다. 그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나라도 아예 무료로 음원을 끊임 없이 들려준다면 어떨까?' 그는 당장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3개월 후. 누구나 무료로 음원을 스트리밍 방식으로 들을 수 있는 '비트'가 세상에 나왔다. 이 서비스를 기획하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는 이가 바로 박수만 비트패킹컴퍼니 대표(사진)다.
비트 애플리케이션 소개 이미지.  비트패킹컴퍼니 제공
비트 애플리케이션 소개 이미지. 비트패킹컴퍼니 제공

2014년 3월, 이렇게 탄생한 '비트'는 지난 1년 간 누적 회원 수 270만 명을 돌파했다. 1년만에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 바탕엔 초반 과감한 서비스 변경이 한몫 했다.

'미투데이', '밴드' 등 국내 굵직한 서비스를 탄생시킨 박수만 대표가 잘나가던 네이버를 뛰쳐나와 새로 선택한 사업분야는 '음악'이었다. 그는 2013년 초 비트패킹컴퍼니라는 음악서비스 벤처를 차렸다. 그는 "모바일에서 중요한 건 콘텐츠"라며 "책, 영화도 있지만, 음악이 스마트폰에서 가장 적합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 있었다. 우선 기존 음악 시장을 분석했다. 600만여명이 멜론, KT뮤직 등 기존 음원서비스를 듣고 있었다. 그는 국내 음원 시장 규모를 600만명으로 국한 짓지 않았다.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이 아니라 누군가가 추천한 음악,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이가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만든 서비스가 지인이 음악 목록을 만들어 추천하는 소셜 음원 서비스였다.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박 대표는 "처절하게 망했다"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음원 목록을 굳이 지인에게 추천하지 않았다. 초반 투자받았던 자금도 음원 사용료로 지급하고 나니 한 달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이 시기 택했던 미국행이 비트 사업을 180도 바꿔놓은 것이다.

그가 미국에서 느꼈던 생각대로 비트 서비스를 바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초반 음원 서비스를 준비할 때 음원 저작권료 문제와 주요 기술은 해결했다. 지인에 추천하던 방식을 비트가 추천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음원 재생 목록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누구나 비트에 접속만 하면 '어떤 음악을 선택할까' 고민 없이 원하는 분위기에 맞춰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떠날 직원은 이미 모두 떠났고, 남은 6명이 3개월간 합숙에 돌입,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그렇게 지난해 3월 비트가 지금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가슴 졸이며 이용자 반응을 기다렸다. 매일 아침 9시 오전 회의는 6명 전 직원이 지인에 비트를 소개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고했다. 박 대표의 초등학생 아들도 참여했고, 직원 할머니도 사용자가 됐다. 그렇게 7주간 매일 아침 회의를 거쳐 이용자환경(UI)은 지금처럼 바뀌었다.

'선곡 고민 없이 무료로 듣는 음악 서비스'는 국내 음악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비트는 월간 청취자만 90만 명에 달하는 주요 음원 서비스로 성장했다. 이용자는 월 평균 6시간을 비트에서 음악을 들었다. 이용자 70% 이상이 하루에 한 시간 이상 비트에서 음악을 청취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라디오 다시 듣기 서비스도 들어왔다. YG엔터테인먼트, 미스틱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음원 제작 업체도 비트에 투자했다. 누적 투자액만 170억원에 달한다. 올 초부터는 광고를 붙이면서 자체 수익 구조도 만들었다. 이용자 무료 음원 서비스는 그대로 유지 중이다. 최근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해외 7개국을 상대로 해외 버전까지 출시했다. 케이팝 인기가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비트를 알려간다는 계획이다.

박 대표는 지금도 불과 1년 전이었던 지난해 1월을 잊지 못한다. 그는 "만약 그 당시 판도라를 접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비트는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창업을 준비하거나 고군분투 중인 젊은 창업가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접어선 안 된다. 사업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그걸 믿고 끝까지 가보는 게 중요하다."

김지선기자 dubs45@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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