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철학을 하면 할수록, 형식논리에만 의존하는 일단의 현대철학은 인간 삶으로부터 소외된 자폐적 담론에 그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의 삶은 형식논리와 같이 화석화되고 형해화된 언어로는 파악될 수 없는 생생한 실존적 원리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는 이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앨런 튜링의 삶을 그린 영화이다. 튜링은 컴퓨터가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천재적인 수학자이다. 튜링의 삶이 영화화까지 된 이유는 그가 2차대전이라는 격변의 역사 속에 휩쓸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의 주인공이라는데 있다 .

사실 튜링은 수학, 컴퓨터과학, 그리고 철학에서는 튜링테스트로 더 유명하다. 튜링은 컴퓨터와 같은 기계도 생각할 수 있다는 주장하며 다음과 유사한 가상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려 했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어떤 방에 인간과 컴퓨터가 있다. 이때 방 밖의 사람들이 방안에 있는 인간과 컴퓨터 각각에게 컴퓨터 채팅과 같은 방식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 답변을 구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방 밖의 사람들이 어느 것이 인간이고 어느 것이 컴퓨터인지 구별하지 못한다면, 컴퓨터는 인간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고 간주해야 한다.

하지만 이 튜링테스트는 단순한 테스트가 아니라 인류의 미래와 관련하여 엄청난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실로 튜링테스트에 근거해 앞으로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새로운 지적 존재자, 즉 트랜스휴먼이 컴퓨터의 기하급수적 발전 속도에 따라 출현할 것이라는 예측이 등장했다. 이 예측은 일단의 미국 철학자들이 튜링의 입장을 철학적으로 포장하여 지능의 복수실현 가능성이라는 이론으로 둔갑시킴으로써 가능해졌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지능은 반드시 자연인과 같이 살을 지닌 생체적 몸을 기반으로 할 필요도 없으며 또 초기의 컴퓨터처럼 진공관일 필요도 없고 또 현재처럼 반드시 실리콘을 기반으로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지능은 물리적으로 다양하게 복수의 방식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제 튜링테스트에 기초한 지능의 복수실현 가능성은 천국의 미래비전을 그려준다. 트랜스휴먼이 지배하게 될 미래는 인간의 존재론적 숙명인 죽음이 없는 영생의 천국이 도래할 것이라고.

트랜스휴머니즘이 영생의 미래를 예언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라는 인간의 의식적 지적 활동은 내 몸에 있는 뇌라는 물리적 기반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그런데 이 뇌는 최근 뇌과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디지털로 시뮬레이션될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의식을 구성하는 활동은 뇌라는 생체적 물리적 실체가 아닌 실리콘을 물리적 기반으로 작동하는 디지털 컴퓨터로 업로드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나의 몸과 그 몸에 있는 뇌가 수명을 다해도 나의 기억과 나의 의식은 물리적 기반을 바꾸어 가며 영속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늘 컴퓨터와 같이 철저히 논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던 튜링은 격변의 역사에 휘말린다. 그리고 논리적 컴퓨터와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를 만나며 자기 존재에 대한 고뇌에 빠진다. 이 고뇌 속에서 튜링은 결정적인 자기 존재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튜링테스트를 반전시킨 자신에 대한 의문이었다. "나는 과연 기계였을까요 인간이었을까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문제를 던지는 것 그리고 그 존재의 문제를 끌어안으며 어떤 존재의 의미나 가치를 향해 결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것, 그러나 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때, 존재가 아니라 무, 즉 죽음을 향해 결단하는 것. 실존철학자들은 이러한 존재방식을 바로 기계도 동물도 할 수 없는 오직 인간에게만 고유한 삶의 방식이라고 설파한다. 이를 증명하듯 논리와 알고리듬으로 작동하는 컴퓨터의 창시자, 튜링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묻는 고뇌 속에서 결단을 내린다. 자신의 삶은 더 이상의 존재해야 할 의미가 없다고. 결국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을 한다. 튜링, 그는 그렇게 스스로 삶을 마감하며 자신이 컴퓨터가 아니라 실존적 인간임을 증명한 것이다.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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