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중소기업중앙회가 해마다 발표하는 '중소기업 금융이용애로 실태조사'를 살펴 보면 자금조달과 관련하여 중소기업인들이 느끼는 부담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조사에서는 이 중 차입조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전체의 61%가 "차입을 하고 있다"이며, 차입 시 대출조건으로는 '부동산 담보'가 32%로 가장 많고, 다음이 '신용보증서'로 31%이다. 순수신용은 20%에 불과하다. 자료를 좀더 넘겨 보면 조사 대상 중소기업 중 주식이나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자금조달 경험이 있는 기업은 불과 3%이고 앞으로 이 같은 자금조달 수단을 이용하겠다고 응답한 기업도 3%에 불과하다.

즉 나머지 94%의 기업이 주식이나 사채와 같은 직접금융과는 담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금조달이라고 하면 '은행 차입'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보증이나 담보가 없으면 차입이 불가능하고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 조달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은 비단 우리 중소기업만의 현실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노던록(Nothern Rock), RBS(The Royal Bank of Scotland) 등이 파산 또는 파산위기에 직면하면서 금융시장이 냉각되었던 영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더욱 심각했던 것은 당시 중소기업 대출의 80%가 영국의 4대 시중은행에 몰려 있었고, 금융위기로 건전성 관리에 부담을 느낀 은행이 돈줄을 죄면서 이들 은행의 중소기업 금융공급이 일시에 경색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생겨난 신조어가 있다. '대출 낙담(discouraged borrowers)', 즉 대출을 시도해 보지 않고도 은행이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을 우려해 지레 은행 접근을 포기하는 현상이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절감한 영국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 2010년 기업은행 BBB(British Business Bank)의 창설이다. BBB는 우리의 산업통상자원부 또는 미래창조과학부에 해당하는 기업기술혁신부(Department for Business, Innovation & Skills)가 100% 출자한 정부 금융기관으로, 영국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 보증, 융자 등 주요 금융지원 기능을 모두 신설 BBB로 통합시켰다. 또한 정책 목적을 수행하는 만큼 금융영업감독청(Financial Conduct Authority)의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BBB 창설과 함께 영국 정부가 제시한 정책금융 체계의 운영 방향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민간과의 경쟁 배제'이다. 영국 정부는 정책금융이 민간 시장과 경쟁하지 않고 민간시장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 이를 위해 BBB는 중소기업에 직접 대출하거나 출자하지 않고 BBB와 제휴하는 민간 금융기관에 재원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지원하도록 했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으며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정부 개입이라는 시각이다.

둘째, '지원 대상의 명확화'이다. BBB가 지원하는 대상은 시장 실패 영역, 즉 경제 전체를 위해 자금이 공급되는 것이 효율적이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자금이 공급되지 않고 있는 부문으로 한정했다. BBB가 꼽은 대상은 '창업기업(Start-up)', '성장기업(Scale-up)', '고역량기업(StayStrong)'이다.

셋째, '다양한 금융수단의 제공'이다.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을 은행 융자나 보증 일변도에서 벤처와 엔젤은 물론, 복합금융(mezzanine finance), 크라우드펀딩, 자산담보부 융자, 개인 간 대출(P2P Lending), 매출채권 금융 등으로 다각화하고 이 모든 것을 기업의 성장단계별로 BBB에서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넷째, '정부 재정의 효율적 사용'이다. BBB 설립과 함께 정부가 BBB를 통해 공급하는 재원의 위험 노출을 계량적으로 평가하고 단기-중기-장기별 핵심성과지표(KPI)에 따른 성과측정을 시행하는 한편, 민간투자의 관행처럼 정책금융 공급에도 기회비용에 해당하는 기대수익률 개념을 적용하여 정부 재원의 효과적 사용을 평가했다.

BBB의 이 같은 시도가 중소기업 금융이 직면한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소시켰는지 여부는 아직 분명치 않다. BBB 자체의 분석으로는 예상했던 목표보다는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공급이 양적으로 증가하고 다양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성과의 엄밀성은 차치하더라도 그 방향성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즉, 중소기업 금융은 이제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공급할지를 명확히 설정해야 하고 이 같은 설정은 모두 과학적인 근거 제시 방식(evidence-based approach)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서야 비로소 '은행-보증-융자'에만 매몰되어 '값싼 눈먼 자금'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정책금융이 경제적 타당성을 인정 받고 중소기업인에게도 공정한 도움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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