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발효=최고 건강식품' 인식 위험
사탕수수 이용 '글루탐산 발효' 주목



정성과 시간을 들여 만들어야 하는 우리의 전통 발효식품이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우리 민족의 저력이 전통 발효식품에서 나온다는 주장도 있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된장·고추장·간장·김치·절임·젓갈·식초·식혜와 같은 우리의 전통 발효식품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역 특화 전통 발효식품을 발굴해서 산업화하는 일에 수천억의 예산을 투입하는 지자체도 있다.

본래 발효는 술을 만들기 위해 곡물이나 과일을 '삭히는 기술'을 말한다. 맥주·포도주·곡주가 모두 발효 기술로 빚은 술이다. 곡물·과일·야채·수산물·축산물과 가축의 젖과 같은 재료를 공기(산소)를 차단한 상태에서 삭히면 아세트산·젖산·글루탐산과 같은 유기산이나 알코올(에탄올)이 만들어져서 독특한 맛과 향기가 생기게 된다. 빵·김치·치즈·요구르트·젓갈이 그렇게 만든 대표적인 발효식품이다. 발효는 식품의 저장에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발효에서 만들어지는 유기산이 부패균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계절에 따라 식품 공급이 제한되는 경우에는 발효 기술이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만 발효식품을 좋아하고, 우리의 발효식품이 최고라는 생각은 현실과 다른 것이다. 우리가 막걸리·전통주·감식초를 자랑하듯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신들의 전통 술과 식초를 자랑한다. 피클·사우어크라우트·군드룩(네팔의 채소 절임)도 우리의 김치나 절임에 버금가는 훌륭한 발효식품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액젓(fish sauce)도 우리의 된장·간장·고추장·젓갈에 손색이 없다. 가축의 젖을 발효시킨 치즈·요구르트 같은 발효식품의 종류는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전 세계 모든 문화권이 자신들의 얼과 혼이 담겨 있다고 믿는 독특한 전통 발효식품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전통을 자랑하려면 남의 전통도 존중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설프게 효능을 앞세우기보다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 이야기(스토리텔링)를 찾아내야 한다. 발효가 미생물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세기 중엽의 루이 파스퇴르 덕분이었다. 균류에 속하는 효모(이스트)나 유산균 같은 박테리아가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스스로의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유기산과 알코올이 만들어지고, 이산화탄소가 방출된다. 그런 발효는 자연 생태계의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심지어 우리의 장 속에서 발효가 일어나기도 한다. 요리에 유별난 관심을 가진 인류는 오랜 경험을 통해 집단적으로 발효식품의 독특한 향미를 즐기게 된 것이다. 그런 발효를 만병통치의 신비스러운 것이라고 우길 이유는 없다.유기산과 알코올이 만들어지는 발효에 반드시 미생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효모에서 추출한 '지메이즈'(zymase)라는 효소 혼합물을 이용할 수도 있다. 지메이즈의 기능을 처음 발견한 에두아르트 부흐너는 1907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심지어 차에 들어있는 폴리페놀 산화효소를 이용해 녹차의 떫은맛을 내는 카테킨을 산화시켜 홍차를 만드는 기술도 발효다.

전통적인 발효 기술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전통을 핑계로 분명하게 확인된 과학적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모든 발효식품이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은 위험하다. 세계보건기구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한 젓갈이나 된장·간장·장아찌처럼 염도가 높은 발효식품은 어느 정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발효 과정에서 부패가 일어날 수도 있고, 잡균에 의해 고약한 맛이나 냄새가 발생하기도 한다. 전통 발효법을 과학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 개발된 발효 기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탕수수를 이용한 글루탐산 발효가 그렇다.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충분한 양을 섭취해야 하는 글루탐산(MSG)을 즐기도록 해주는 기술을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 발효 기술이 식품 제조에만 활용되는 것도 아니다. 고갈 위기에 놓인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바이오에탄올의 생산에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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