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재정정책 등이 재정 고갈 상태 불러와 투자 심리 회복 위한 강력한 정책신호 필요 기술투자에 집중 재정지출 우선순위 세워야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최근 우리경제의 디플레현상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면서,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통화정책을 견지해오던 한국은행이 결국 기준금리 인하조치를 취하였고, 이에 더해서 소비진작 및 경기회복을 위하여,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및 기업의 임금인상을 독려하는 진풍경까지 연출되고 있다. 지난 80년대 이래 과도한 임금인상이 한국경제와 산업경쟁력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주장해왔던 우리 정부의 입장이 하루아침에 뒤바뀔 정도로 우리경제의 침체국면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더욱 꺼림칙한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일본의 장기불황과 우리경제의 구적인 유사점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930년대의 대공황을 겪으면서, 급격한 경기변동의 흐름을 조절해줄 수 있는 거시경기조절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왔다. 그러나 지난 20여년에 걸친 일본경제의 장기불황 경험은, 민간경제주체들의 유인체계(incentive system)를 바꾸어주지 못하는 단순한 기계적인 경기확장정책은 재정적자만을 심화시키면서, 더욱 심각한 경기침체를 초래함을 보여줬다.
지금 우리경제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는 것은 근자 우리경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과거 일본의 장기불황이 심화될 때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첫째는, 정부정책이 주는 잘못된 유인체계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급한 산업기술개발투자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심각한 국가재정고갈을 초래한 잘못된 보편적 복지정책이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보편적 복지정책의 특징을 소득대비 조세부담비율에 초점을 맞추어 요약하자면, 저소득층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으로 고소득층에게 무상복지를 제공하는 잘못된 제도이다. 복지란 고소득층의 소득을 저소득층에게 이전하여, 사회통합과 함께, 저소득층의 삶의 수준과 생산성을 높여, 지속가능한 통합된 사회를 위한 투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소위 '보편적 복지정책'이란 변명할 여지없이, 선거를 겨냥한 얄팍한 포퓰리즘이었음이 최근의 복지재정고갈상태에서 다시금 확인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선거가 끝나고, 이런 잘못된 포퓰리즘 공약의 폐해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진정한 노력은 없이, 엉뚱한 정략적 전술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경제를 디플레의 악순환으로 몰고 가는 것은 단순한 소비심리의 위축만이 아니다. 최근 미국경제의 회복세를 주도했던 요인은 소비주도형 경기회복이 아니라, 정부의 강력한 경기회복정책신호에 기반한 투자확대에 의한 경기회복이었다. 최근의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소비심리가 아니라 투자심리가 유의미한 경기선행지수로 자리를 잡았다. 최근 미국의 경기회복은, 이러한 안정적 투자심리를 보장해준 미국정부와 중앙은행의 일관된 정책의 결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일본경제와 미국경제의 사례는 디플레의 악순환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한국경제에 대하여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첫째, 투자심리의 회복을 위한 정부정책의 중요성이다. 투자심리는 정부의 미사여구에 의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정부정책에 의해 뒷받침되는 기대수익에 의해 회복될 수 있다. 즉 세계시장의 흐름을 반영하여, 우리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기술투자정책 등 정부의 일관성 있는 산업정책이 민간부문 투자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줄 때, 투자심리는 자연히 회복된다.
정체불명의 창조경제와 일방적 시장개방형태의 무역정책을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정책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정책은, 민간투자의 미래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면서 디플레를 심화시킬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산업정책과 무역정책이 무엇을 목표로 어떤 정책수단을 집행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여,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서, 투자심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둘째, 정부가 보편적 복지정책과 같이 명백한 포퓰리즘 정책 등의 정책오류를 효율적으로 보정하는 문제해결노력을 보이는 것이 디플레 악순환 탈출의 선결조건이다. 잘못된 총선용 선거 전략을 선거가 끝나고서도 그 부작용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정치적 지지도에만 연연하여 고집하는 한, 디플레악순환은 벗어날 수 없다. 우리경제의 유한한 자원을 부유층 자제들의 무상보육에 쏟아 넣을 것이 아니라, 우리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기술투자에 집중될 수 있도록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 우리경제가 직면한 당면과제는 우리가 최근 한중FTA를 통해 우리경제의 빗장을 열어보여준 상대국인 중국과 기타 우리의 경쟁국가들에 대하여 향후 10년 이후에도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산업에 대한 그림도, 희망도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자동차, 화학산업, 조선산업 등 우리나라의 주력산업들은 모두 빠르게는 1~2년, 늦어도 3~7년내에 중국에 추월당할 것으로 보는 것이 서방 산업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엉뚱한 수사학과 노련한 정쟁전략이 아니라 문제해결의 진정성이 디플레 악순환의 유일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