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전제조건은 생각의 유연성에 달려
기업 내부의 사고문화도 토론과 논쟁 원활할 때
소통과 창의성 계발돼 유연성으로 경쟁력 높여야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과실연 명예대표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과실연 명예대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다고 해서 성공 확률이 높을까요?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은 크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도 돈도 아닌, 그 사람의 '생각'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전자결제 시스템 회사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의 말이다. '정작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는 생각이며, 이를 말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도 하였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러한 '용기'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창의적인 아이디어임에도 주변 사람의 무시와 지탄에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사정이다. 기존 문화라는 프레임에 우리를 가두고 있는 관습, 위계질서, 흑백논리, 이에 기반한 부정적 사고, 쏠림현상은 우리 사회를 경직되게 만든다.

마이크로 프로세스, 자동제어 등 산업적 응용에 활용되는 '퍼지'이론은 '뜨거운', '느린', '아름다운'과 같이 주관적이고 애매한 인간의 생각을 수학적으로 규칙화하고 계산하도록 하여 기계를 더 영리하게 만들어간다. 이는 흑백 논리를 넘어 애매한 부분을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하며 인간 사고의 유연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 '부드러운'(소프트) 컴퓨팅이라고 한다.

현 정부 3년차 들어서며 강조되는 '소통', 우리 사회의 큰 숙제인 '사회적 합의'도 결국 생각의 유연성이며 서로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한 쪽만 요구해서 될 일이 아니며, '정도'의 문제를 놓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다. '선명성'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도움이 안 되기도 한다. 세상사란 사람들의 마음인데 어떻게 '이다', '아니다'로만 가를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어떤 사안에 90%가 좋고, 10%가 문제 있으면, 대개 10%에만 올인하고 여러 규정과 제도를 만들어, 건강한 90%까지 옥죈다. 이제는 90%는 마음껏 펼치게 하고, 나머지 10%는 맞춤형으로 푸는 것이 더 생산적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긍정의 힘이며, 유연성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기업들도 올해 더욱 위기의식을 가지고 미래 경쟁력을 위해 구조개선과 연구개발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제는 기업 내부의 사고 문화다. 과연 기업 조직문화에서 위계질서 상관없이 마음껏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느냐다.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이 원활할 때 진정한 소통과 창의성, 공동체 의식이 자란다. 우수한 젊은이들이 대기업에서 견디지 못하고 나오는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창조경제는 '선도적 연구'를 추구하는 것인데, 연구개발 지원도 경직된 관리 차원의 틀을 넘어, 연구내용에 맞게 맞춤형으로 지원하고 그 가치와 영향력을 읽도록 해야 한다. '조급'보다는 '긴 호흡'으로, '빨리'보다는 '제대로', '열심히'보다는 '창의적'을 강조해야 한다. 일본의 과학기술기본계획은 선언적이며 우리의 것처럼 정량적인 계획이나 목표는 찾아보기 어렵다. 연구자의 자율성을 높이는 일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경제 재도약의 귀중한 골든타임'을 최대로 선용하려면 먼저 생각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다려주는 여유다. 피터 틸의 저서 '제로 투 원'에서 강조한 0에서 1로 점프하는 '수직적 진보'도 바로 '생각'에 달렸다. 한국이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스타트업 열기가 가장 뜨겁고 사고방식이 독특한 사람이 매우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모두 서로가 '유연성'을 마음에 담아야 한다. 우리 모두의 살 길이다.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과실연 명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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