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옥 금융증권부장
한민옥 금융증권부장


"이런 아사리판은 처음이다."

지난해 처음 금융증권부장을 맡은 필자가 느낌을 묻는 지인들에게 한 말이다. 그랬다. 이방인(?)의 눈에 한국금융은 한마디로 '아사리판'이었다. 신뢰도 없고 경쟁력은 더욱 없었다. 오로지 관치만 존재했다. 관치 때문에 깜짝 인사가 이뤄졌고, 관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수개월째 인사가 미뤄지기도 했다. 정부 고위관료가 거리낌 없이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에 개입했고, 금융회사들은 선생님 눈치를 보듯 금융당국의 의중을 살피기 바빴다. 심지어 관치 인사 간 내분을 벌이는 막장 드라마도 연출했다.

이러던 금융권이 최근 달라지기 시작했다. 금융당국 스스로 철옹성과 같던 규제를 하나둘씩 푸는가 하면, 그간 손쉬운 담보대출 위주의 '이자장사'에만 치중해 온 금융회사들도 혁신을 외치고 있다. 금융당국이나 금융회사 모두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팽배한 모습이다.

사실 한국금융은 현재 심각한 위기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은 한국 금융시장의 성숙도를 세계 80위로 평가했다. 이는 아프리카의 말라위(79위), 우간다(81위)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금융의 수준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무엇보다 금융당국의 과보호(?) 속에서 한국이라는 우물 안에 안주해 금융회사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지 않은 탓이 가장 크다.

그러는 사이 우물 안도 상황이 나빠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역대 최저 수준인 1.79%다. 이는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98%보다도 0.19%p 낮다. 저금리, 저성장 기조를 감안할 때 앞으로 NIM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금융과 IT의 융합, 일명 '핀테크'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금융 패러다임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IT는 금융의 주류가 아니었다. 하지만 핀테크로 금융과 IT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금융회사들은 IT기업들의 거센 도전에까지 직면하게 됐다. 이미 구글·애플·알리바바 등 글로벌 기업에 이어 다음카카오·삼성전자 등이 제휴를 통해 핀테크로 금융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제 한국금융은 이름 빼고 다 바꾼다는 각오로 변해야 한다. 금융당국과 금융회사 모두 어느 정도 혁신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한 듯하나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금융당국은 당장 규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금융에 대한 관치 인식을 바꿔야 한다. 금융회사의 인사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관치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금융판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특히 핀테크 관치는 곤란하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핀테크 육성책을 두고 새로운 관치가 시작됐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왜 핀테크가 필요한지, 한국 금융환경에 맞는 핀테크는 무엇인지 제대로 된 고민 없이 보여주기식으로 정책을 나열하고, 그에 맞춰 금융회사들을 동원하는 것은 누가 봐도 신(新) 관치다.

금융회사들도 마찬가지다. 혁신은 최고경영자(CEO)가 구호성으로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오프라인 관행에 빠져 있는 금융회사 내부 인식부터 대전환이 필요하다. 심지어 아직도 금융회사 상당수가 IT를 부수적인 수단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스마트금융과 핀테크를 외치는 이면에는 'IT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혁신 없이 한국금융의 미래는 없다. 그런 차원에서 핀테크는 한국금융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IT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24시간, 실시간 전자금융거래가 가능한 나라도 세계적으로 우리뿐이다. 이제라도 우리의 강점을 기반으로 한국형 핀테크 모델을 개발한다면, 결코 핀테크 선진국에 뒤지지 않을 수 있다.

한민옥 금융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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