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제염해체연구부 최병선 연구팀이 '원전 해체용 실감형 시뮬레이터'를 시연하고 있다. 최병선 박사(맨오른쪽)가 팀원들과 가상 공간에서 고리 원전 1호 원자로를 해체하고 있다.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지난 13일 방문한 대전 덕진동 한국원자력연구원 엔지니어링동 연구실 한 켠에는 IT전시회에 어울릴 듯한 3D 시뮬레이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실행하니 대형 스크린에 고리원전 1호 내부 원자로를 3차원으로 묘사한 영상이 나타났다.
조종석에 앉아 오른쪽에 위치한 조정장치에 손을 대고 움직이자, 영상 속 로봇팔이 원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봇 팔이 벽과 파이프 등 장애물에 부딪히자 '지잉'하는 진동과 함께 충격이 손에 그대로 전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노후 원전이 늘어나면서 원전 해체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원전 해체용 실감형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염해체연구부의 최병선 연구팀이 개발한 이 기술은 원자로의 실제 해체 작업 과정에서 가상 현실로 공정을 사전 검증하고 원격 절단 작업을 실시간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술이다.
원전 해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으로 작용하는 요소는 바로 '안전성'이다. 방사성물질을 다루는 작업이 까다롭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원전이 수명 만료 결정을 받으면 원자로에서 핵연료를 제거하고, 오염제거 과정을 거쳐 철거작업에 돌입한다. 철거작업의 핵심은 원자로 압력용기 절단이다. 평균 두께가 30㎝인 압력용기를 수십 개의 조각으로 잘라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작업자는 방사선 피폭을 피하기 어렵다. 방사선의 노출을 피해 최대한 신속하고 안전하게 해체하는 것이 관건인 셈. 연구팀은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고민을 하다가 2012년 3월부터 3D 시뮬레이터 개발을 시작했다.
최병선 박사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원전 해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혁신적인 선도형 기술이 필요했다"며 "한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ICT 기술을 활용하면 최상의 방법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오는 이르면 오는 4월까지 실감형 시뮬레이터의 개발을 완료하고, 다양한 해체 공정 시나리오를 시험해 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의 원전 해체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계 원전 시장에서 선진국들과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계획이다.
최 박사는 "향후 2년 동안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제성이나 안전성 측면에서 최적인 시나리오를 찾아 이 값을 정량화할 것"이라며 "이 기술이 완성되면, 관련 분야에서 앞서 있는 프랑스 등 선진국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