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기배 서울성모병원 원장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 2015 새해 새 비전

대담 = 안경애 생활과학부장

"1등이 아니면 안 통한다. 1등 분야가 5개만 있으면 아무리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높아도 버틸 수 있다. 남들과 차별화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특화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나가야 한다."

지난달 22일 서울성모병원 집무실에서 만난 승기배 서울성모병원장은 시종 유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최근 의료계가 낮은 의료 수가와 경기 불황에 따른 환자 감소로 위기감이 높지만, 그가 원장을 맡은 서울성모병원은 안팎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연이어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서울 소재 상위 5개 대형병원을 가리키는 '빅5 병원' 중 전체 규모나 수익에서 막내 격이지만, 최근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다른 병원들과 달리 흑자를 이어가며 내실 있는 성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승 원장이 취임 초부터 강조해온 '선택과 집중'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서울성모병원이 자랑하는 조혈모세포이식(BMT)센터는 이미 국내 최초로 조혈모세포이식 5000건을 돌파해 세계 최고 수준을 입증했고, 국내 최초로 각막이식수술을 성공한 안센터는 국내 각막이식수술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심뇌혈관센터와 세포치료센터를 개설해 1등 분야를 넓혀나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병원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서울성모병원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외국인 환자는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고, 최근에는 국내 병원 중 최초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에 한국형 건강검진센터를 설립하는 계약을 체결해 이달 말에 문을 연다.

올해도 의료계 전반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과 비급여 항목인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의 전면 급여화는 대형병원들의 살림을 더 각박하게 만들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당당히 "희망이 있다"고 얘기하는 승기배 원장의 비전과 계획을 들어봤다.

- 지난해 해외 진출 성과가 눈에 띈다.

"중동, 특히 UAE에서 온 환자들이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다. 이들이 병원을 찾은 첫 번째 이유는 BMT센터다. 이 센터는 1983년도에 설립돼 국내 최초로 골수이식을 실시했다. 레지던트 1년 차에 국내 두 번째 골수이식 환자를 돌봤었는데, 한 달 동안 함께 먹고 자며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다. 교수 중에는 30년 동안 한 길을 걸으며 본인 전셋돈까지 빼서 연구한 교수도 있었다. 이런 희생과 노력으로 BMT센터가 세계적인 센터로 성장했다.

중동 지역에는 부족끼리 결혼을 하는 관습에 따라 근친혼이 많아 혈액 질환이 많이 생긴다. 이들이 BMT센터에 와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환자들이 늘자 작년 2월에 UAE 왕세자가 직접 병원에 방문해 자국 환자들을 위문하기도 했다. 이 일이 현지 방송에 계속 비치면서 현지 환자들이 서울성모병원을 지목해서 찾아오게 됐다. 지금은 혈액암 환자를 중심으로 다른 중증질환 환자들로 층이 넓어지고 있고, 중동 학생들도 연수를 와서 의술을 배워가고 있다. 해외 환자 유치가 늘고 성과가 수출로 이어지면서 병원의 이미지도 과거 보수적인 이미지에서 진취적인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 UAE 건진센터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현지 업체에서 시설과 장비는 다 준비하고 우리 쪽에서 의사 4명을 포함해 핵심요원 24명이 파견을 나간다. 14명은 성모병원 출신이고, 12명은 외부에서 영입했는데 경쟁률이 5대 1에 이를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우리 병원은 건진센터에서 올리는 매출의 10%를 로열티로 받는다. 해외에 진출한 다른 병원들은 대게 5~7% 수준을 받고 있는데, 이익도 아닌 매출의 10%를 받는 건 매우 좋은 조건이다. 인건비도 전부 그쪽에서 부담한다.

중동에는 아직 '건진'이라는 개념이 없다. 작년에 현지에서 기자간담회를 했는데 현지 기자가 배가 아프면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건진센터에 가야 하는지 물을 정도였다. 숨어있는 병을 초기에 찾아 예방하고 관리하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소식을 들은 현지 관공서나 기업에서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 또 우리는 건진에 보험이 적용되지 않지만, 현지에는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더 쉽게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두바이에서도 같은 사업을 추진 중이고, 소식을 들은 다른 지역에서도 제안이 들어오고 있어 올해 해외 진출 성과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 대형 병원이 나가야 할 길을 앞서서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나라 의료 수준은 이미 세계적이다. 의과대학에 좋은 인력들이 많이 들어왔고, 병원 내에서도 외국을 꼭 나가야 진급 조건이 됐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 선진 문화를 빨리 배워 접목했다. 의료 수준이 높아지니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골수이식이나 심내혈관 스텐트 시술 등 몇몇 분야는 외국 어디와 비교해도 당당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병상 수는 OECD 평균의 거의 2배다. 병상이 너무 많다는 의미다. 시장이 포화돼 있어 병원들이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고, 이미 탈락하는 병원들도 나오고 있다. 탈출구는 의료 산업을 서비스 산업으로 발전시켜 수출하는 것이다.

중동 현지에 갔을 때 뜨거운 건설현장에서 고생했을 노동자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이제는 현지 병원에서 고급 인력으로 대접을 받고, 연봉도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국내 연봉의 2배를 받는다. 국내 환자만 봐서는 미래가 없다. 시장을 넓혀야 한다. 다만 해외에서는 1등이 아니면 안 통한다. 남들과 차별화되고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특화해 그걸로 세계에 나가야 한다."

- 올해 주요 계획은 무엇인가.

"올해는 다들 어려우니까 견디는 게 목표라고 대부분 얘기한다. 그래도 우리 병원은 성장곡선이 올라가고 있는 추세인 만큼 더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 작년에 고객 행복, 초진 향상, 해외 환자 유치 등 3개 태스크포스팀(TFT)을 만들었다. 목표에 맞춰 입원, 외래, 간호, 행정 등 병원 전체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였다. 고객 행복 분야에서는 국가고객만족도(NCSI)에서 삼성서울병원과 공동 2위를 했고, 한국표준협회의 콜센터 만족도 평가는 1위를 했다. 외부에서 평가하는 고객서비스와 만족도, 환자 서비스 질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다만 계속 TFT로 움직이니 피로도가 있어 올해는 좀 더 과제를 압축해 핵심 개선사항 중심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것은 협업이다. 하드웨어를 더 늘리지 않고, 우리가 가진 재원 중 개발되지 않은 재원들을 같이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각 과에서 가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협업 목표로 설정해 관련 업무부서들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시너지를 내도록 할 계획이다."

- 선택과 집중을 통한 특화 전략은.

"현재 병원에서 3개 분야가 세계 1등 수준인데, 이를 5개 정도로 늘리고자 한다. 지난해 심내혈관센터를 만들어 장기 중심으로 모든 과를 한데 모았다. 방사선과, 신경외과, 신경과, 심장내과, 혈관외과 등이 한곳에 모여 외래를 본다. 1년 정도 지나 분석을 해보니 각각 흩어져서 일할 때보다 서로 주고받은 협의진료 횟수가 확 늘었다.

또 얼마 전 세포치료센터를 만들었다. 그동안 줄기세포 연구를 많이 해서 임상 단계에 온 기술들이 많다. 이를 활용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센터를 열었다. 성체줄기세포로 재활이나 심근경색, 림프종 등을 치료한다. 이런 식으로 1등 분야가 5개만 있으면 아무리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높아도 버틸 수 있다."

- 의료기기 사업화도 활발하다.

"최근 의료기기센터를 만들어 150억원 규모의 산업통상자원부 R&D 과제를 수주했다. 그동안 병원에서 기술을 개발해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은데, 의료기기는 현장에 아이디어가 많고 의사들이 특허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카테터 시술을 할 때 서양인은 심장과 대동맥 사이의 거리가 짧은 데 우리나라 사람은 더 멀다. 보통 의료기기는 외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불편한 경우가 많다.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에 맞춰 길이나 각도를 바꾼 의료기기를 개발할 수 있다."

- 병원의 장기 비전은 무엇인가.

"대형병원의 역할은 의료의 질로 승부하는 것이다. 중증도가 높은 이식이나 혈액질환, 세포치료, 심뇌혈관 분야 등을 계속 업그레이드해서 수준 높은 의료를 제공해야 한다. 또 해외의 문을 두드려 수출을 많이 하고, 해외 환자도 더 많이 오게 해야 한다. 특히 중동 지역의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계속 발전해 나갈 여건이 되기 때문에 일단 중동에 집중하려 한다."

-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늘 나오는 얘기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저수가가 가장 큰 문제다. 수가로 병원 유지가 안 되니 비급여 항목이 계속 생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꾸 의료가 왜곡되고, 본연의 임무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돈만 아는 의사'라는 비판의 밑바닥에는 저수가가 있다. 병원 입장에서는 수가가 올라 수가 내에서 이익이 남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저수가 문제를 한 번 제대로 연구해서 현실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의료비를 잘못 건드리면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수가를 정상화하려면 결국 국민들이 그만큼 돈을 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설득할지 쉽지 않은 문제다. 지혜를 모아야 한다.

또 하나는 정부에서 의료를 산업화하겠다고 하는데, 이를 위해선 먼저 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민한 문제일 수 있지만, 의료를 서비스 산업화하려면 걸맞은 토양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정리=남도영기자 namdo0@dt.co.kr

◇ 승기배 원장은…

승기배 원장은 1981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1990년부터 순환기내과학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내과학교실 학과장, 순환기내과 임상과장, 심혈관센터장, 대한심장학회 중재시술연구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년간 1만례 이상의 심장질환 관상동맥성형술(스텐트 삽입술)을 시술한 심혈관 질환 치료의 권위자이다. 활발한 연구 활동으로 200여 건의 연구논문을 SCI(과학기술논문색인) 저널에 게재했다. 특히 '관상동맥 좌주간지 병변에 대한 경피적 스텐트 시술 및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의 비교' 논문에 제1저자로 참여하는 등 세계 최고 권위의 의학저널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지(NEJM)'에 4건의 논문을 발표했다.

○ 약력

- 1975.3∼1981.2 가톨릭의과대학 의과대학 학사

- 1983.3∼1985.2 가톨릭의과대학 의과대학 석사

- 1990.3∼1993.2 가톨릭의과대학 의과대학 박사

- 1995.3∼1996.8 미국 에모리대학교 연수

- 2002.1∼2008.12 가톨릭의과대학 강남성모병원 순환기내과장

- 2003.1∼2008.12 가톨릭의과대학 순환기학과장

- 2009.9∼2011.8 가톨릭의과대학 서울성모병원 내과 과장

- 2013.9∼현재 가톨릭의과대학 서울성모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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