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경기침체에 시달리는 대기업들이 연구개발(R&D)이나 공격적인 투자 대신에 구조조정으로 활로 찾기에 나서고 있다. 내수 부진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해외 기업과의 경쟁이 심화되는 데다 구조적인 장기불황이 추후 수 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기업들이 '고육지책'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청년들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4일 상위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2015년 투자·경영 환경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설문에 응답한 29개 그룹 중 절반이 넘는 17곳(58.6%)이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할 경영전략으로 '사업 구조조정 등 경영 내실화'를 꼽았다. 반면 'R&D 투자 등 신성장동력 발굴'이라는 응답은 8곳(27.5%)에 불과했고, '시장점유율 확대 등 외형 성장'이라는 응답도 2곳(6.9%)뿐이었다.
실제 설문에 응답한 그룹 중 삼성·SK·한화그룹 등은 사업 구조조정 뿐만 아니라 인적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거나 올해 추진할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매각한 것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삼성종합화학·삼성석유화학을 합병했고 삼성테크윈·삼성토탈·삼성탈레스는 한화그룹에 매각했다. 인력 구조조정도 병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본사 지원부서 인력의 15%를 각 사업부에 배치했고 삼성전기는 지난해 11년만에 경영진단에 들어가 차·부장급의 희망퇴직을 받았다.
SK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이 SK케미칼에 SK유화를 매각했고 유럽 배터리 시장 공략을 위해 만든 합작법인인 SK콘티넨탈도 정리했다. 한화 역시 지난 해 한화L&C의 건자재 부문을 매각했고 한화생명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수백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두산의 경우 두산인프라코어가 지난달 30일부터 희망퇴직을 신청받고 있다. 앞서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의 52세 이상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신청을 받은 바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주력 계열사인 중공업을 시작으로 계열사들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회사의 실적 부진으로 인해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부터 과장급 이상 사무직 15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접수를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마무리 시기는 아직 정확하지 않다. 지난 2012년에는 100여명이 정리됐는데 이번 (희망퇴직에는)정해진 규모는 없다"고 밝혔다.
CJ그룹의 경우 구조조정 계획이 없다. 회사 관계자는 "실적 등 회사 상황이 나쁘지도 않은 만큼 지금 상황은 구조조정을 할 시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CJ그룹 같이 당장 구조조정 계획을 잡지 않거나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위기를 타개하려는 재벌 그룹도 다수 있지만 내수부진·경기침체가 계속될 경우 이들마저 구조조정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기업들이 일제히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은 장기 불황에 대한 우려에서다. 전경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29개 그룹 중 24곳(82.8%)은 '구조적 장기불황이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일시적 경기 부진'이라는 응답은 17.2%(5곳)에 불과했고 경기침체가 아니라는 응답은 한 곳도 없었다. 최근 경영환경을 묻는 질문에 21개 그룹(72.4%)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비슷'(5곳)하거나 '더 나쁘다'(16곳)고 응답했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주요 그룹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 못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최근 경제상황을 구조적 장기 불황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경제가 조속히 성장 활력을 되찾도록 모든 경제주체들이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 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