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웅 성균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이재웅 성균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유럽중앙은행(ECB)이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을 막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유로존의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 완화에 나서기로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양적완화(QE)를 실시해서 경기침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도 성공할 수 있을까?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우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우선 유로존의 규정이 유럽중앙은행의 회원국 금융지원을 억제한다. 회원국들이 유럽중앙은행의 구제금융에 의지해서 경기회복 노력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ECB는 자산유동화증권, 카버드본드 등을 매입하고 그리스, 스페인, 이태리 등의 국채를 매입하는 등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지난 6월에는 금리를 제로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로존이 디플레이션 위기에 빠지자 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는 지난달 1.2조 유로 규모의 자산 매입프로그램을 발표했다.

ECB가 미국의 연방준비은행과 같은 양적완화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정치적, 제도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있다. 유로존 기업들은 미국 기업과 달리 자금조달을 채권 발행보다 은행 차입에 주로 의존한다. 유럽중앙은행은 국채매입 자금조달을 회원국의 경제규모에 비례해서 부담할 계획이므로 자금은 대부분 독일과 프랑스에서 조달할 것이다. 반면에 국채매입은 그리스 등에서 이루어지면 결국 낭비성이 높고 개혁에 저항하는 정부들을 구제할 우려가 있다. 또한 양적완화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논란도 있다. 은행들이 건전성 유지를 위해서 대출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서 자산 거품을 조장하고 기업이나 가계에는 크게 공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야심찬 금융실험인 유로화(貨)는 과연 존속될 수 있을까? 2015년 벽두에 그리스의 유로 탈퇴 망령이 되살아나자 유로화의 달러화에 대한 환율은 20여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그리스의 긴축반대를 내세우는 시리자당(黨)이 지난달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유로존의 금융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프랑스, 이태리 등은 EU의 재정규칙을 완화해서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도록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로존의 금년도 경제성장률은 1.1%로 전망된다. 미국 경제성장률의 약 3분의 1이다. 유로존의 실업률은 지난 2년 동안 12%에 이르렀으며 젊은이들의 4분의 1은 실업자이다.

유로화는 공동 통화로서 구조적인 문제를 내포한다. 이러한 모순이 2012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유로화 위기로 나타났다. 투자자들은 채무국의 자산을 투매했고 금리는 폭등했다. 유로존 회원국들은 공동 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평가절하 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2012년 그리스의 금융위기는 유로화의 붕괴 가능성으로 치달렸다. ECB 드라기 총재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유로화 붕괴는 막겠다고 약속함으로서 간신히 위기는 진정됐다. 이와 함께 유로화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개선도 이루어져서 유로화는 최악의 상황은 넘겼다. 그러나 유로화의 구조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유로화 존립에 관한 불확실성은 계속 남게 될 것이다. 유로존이 디플레이션에 빠질 경우 유로 위기는 재발할 수 있다. 지난달 마리오 드라기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양적완화를 발표한 것도 유로존의 디플레이션을 막아내고 유로화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겠다.

이재웅 성균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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