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위협보다 신용카드 정보유출을
현대인들은 더 두려워해 트래픽 암호화가 되면
정보유출 위협 줄어들어 정책공론화 필요한 시점

이호근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이호근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정보보안을 위한 '암호화(Encryption)'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비밀이란 뜻을 가진 '크립토스(Kryptos)'다. 암호란 중요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오랜옛날부터 황제나 군주가 지방 관리에게 보내는 비밀문서나 전쟁 중의 작전지시 등을 위해 사용해 왔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암호는 기원전 450년경 그리스인들이 고안해 낸 '스키테일(Skytale) 암호'다. 스키테일이라고 불리는 원통형 막대기에 가느다란 양피지 리본을 위에서 아래로 감은 다음 옆으로 메시지를 적은 후 리본을 풀어서 보내면 그 뜻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일한 굵기의 원통 막대기를 가진 사람만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암호방식인 셈이다. 로마의 황제였던 줄리어스 시저는 가족과 비밀통신을 할 때 각 알파벳순으로 세자씩 뒤로 물려 읽는 방법으로 글을 작성한 '시저암호'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D는 A로, E는 B로 바꿔 읽는 방식으로 수신자는 암호문 문자를 좌측으로 3문자씩 당겨서 읽으면 원래의 평문을 얻을 수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암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암호집을 영국에게 빼앗겨 패전을 맛봐야 했으며,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일본군의 암호를 해석하여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하였다. 암호가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특성 때문에 '인디아나존스', '다빈치코드', 그리고 '내셔날트래져'와 같이 암호를 주제로 한 영화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2차 세계대전 중 난공불락의 독일군 암호체계인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하기 위해 비밀임무를 수행하였던 천재 수학자 앨런튜링(Alan Turing)의 실화를 다룬 '이미테이션 게임'이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갤럽조사에 의하면 현대인들은 테러 위협보다 신용카드 정보유출이나 스마트폰 해킹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2013년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 주요 동맹국 정상들의 전화와 메일을 수년간 불법으로 감청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세계적으로 '보안 신드롬'이 확산됐다. 국내에서도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에 대한 검찰의 사이버 검열논란으로 카카오톡 가입자들이 대거 해외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으로이동하는 '사이버 망명'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보안에 대한 대중의 이러한 우려 때문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은 자사의 데이터센터에 있는 자료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트래픽을 암호화하고 있다. 최근 2년 사이 글로벌 유무선 네트워크에서 암호화된 트래픽이 2~3배나 증가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보안 때문이다.

트래픽 암호화가 확대되면 개인정보유출의 위협은 상대적으로 줄어 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암호화된 트래픽은 송수신자 외엔 메시지의 세부내용을 알 수 없는 블랙박스가 되므로 네트워크 관리자가 보안을 위해 트래픽을 점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미국의 글로벌 IT 분야 컨설팅 업체인 가트너(Gartner)는 앞으로 기업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사이버 공격의 절반 이상이 암호화된 트래픽에 의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암호화된 트래픽은 사이버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방어 시스템을 우회할 수도 있고, 불법 유해 콘텐츠의 유통경로로 악용될 수도 있다. 보안을 위해 도입한 트래픽 암호화가 역설적으로 사이버 공격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트래픽 암호화가 ICT 생태계에 미치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정책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호근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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