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공간에 산소농도 낮아져
특별한 자각증상도 없이 질식


건강한 작업자들이 질소 때문에 목숨을 빼앗기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질소는 사람을 죽이는 독성 물질이 아니다. 오히려 육지에서 공기를 호흡하는 삶을 선택한 우리는 질소와 함께 살아가도록 진화했다. 실제로 우리가 매일 호흡으로 들이마시는 공기의 78%가 질소다. 과대 포장이라는 비난을 받는 과장 봉지를 팽팽하게 부풀도록 해주는 것도 역시 질소다. 그런 질소 때문에 일어나는 사망 사고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공기나 과자 봉지에 들어있는 질소는 질소 원자가 삼중 결합으로 단단하게 결합돼 있어 화학적으로 유난히 안정하다. 무색·무미·무취인 질소가 다른 물질과 잘 반응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질소는 공기 중의 산소에 의한 산화를 막아주는 목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과자나 식품의 포장에 질소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질소가 과자나 식품이 유통 과정에서 공기 중의 산소에 의해 변질되는 것을 막아준다. 화학 실험실, 반도체 가공 공장, 원전에서도 그런 목적으로 질소를 사용한다. 물론 질소는 요소와 같은 질소 비료를 생산하는 원료로 이용되기도 한다.냉동시켰던 정자나 난자는 필요할 때 녹여서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녹이는 과정에서 세포가 파괴되지 않도록 해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액체 질소를 이용해서 어류·육류·야채를 급속 냉동시키는 기술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런 질소가 누출된다고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대부분이 질소인 공기에 누출된 질소가 조금 더해질 뿐이다. 차가운 액체 질소도 지나치게 많은 양이 피부에 직접 닿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질소가 특별히 귀거나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흔전만전인 공기에서 먼지를 걸러낸 후에 충분히 냉각시키면서 압축시키면 순수한 질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너무 많은 양의 질소가 누출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질소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질소 때문에 산소의 상대적인 농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람과 같은 육상 생물은 호흡을 통해 충분한 양의 산소를 얻지 못하게 되면 질식(窒息) 상태에 이르게 되어 생명이 위험해진다. 질소에 중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포에 산소 공급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사실 '질소'(窒素)라는 이름도 '질식시키는 기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중에는 보통 21%의 산소가 들어있다. 그런데 산소의 농도가 19% 이하로 떨어지면 사람들이 호흡에 불편을 느끼기 시작한다. 호흡이 가빠지고, 집중력과 근육 기능이 떨어지기도 한다. 산소 농도가 더 낮아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산소 농도가 5% 아래로 떨어지면 몇 차례의 호흡만으로도 순식간에 의식을 잃어버린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질식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서 본인은 아무런 고통이나 자각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질식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다.

누출이라는 표현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질소 기체를 공급하는 배관에 문제가 생겨서 질소 기체가 새나왔다면 누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정상의 필요 때문에 탱크에 의도적으로 질소 기체를 채워 넣은 것은 누출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탱크에 산소 공급 장비도 갖추지 않은 작업자를 들여보낸 것은 최소한의 상식조차 무시한 황당한 일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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