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연구개발 50년 세계사에 유래없는 초고속 성장 일궈내 연구로와 중소형 원전분야 세계시장 선점 주력할 때 원자력의 꿈 함께 달려가야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괴테는 80년이 넘는 생애 동안 왕성하게 활동하며 시와 소설, 희곡과 산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대작으로 손꼽히는 희곡 '파우스트'는 구상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무려 60여 년이 걸린 작품이다. 괴테가 남긴 "꿈꿔라. 꿈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열정과 진심이 담긴 자신의 한 평생을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원자력 연구개발을 시작한지 어느덧 반세기가 넘었다. 1959년 서울 공릉동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할 당시, 청년이었던 과학자들은 이제 원자력계의 원로가 되어 후배들에게 경험과 지혜를 전수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사를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한 '신화'라고 입을 모은다. 195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도 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우리나라가 원자력 강국으로 우뚝 선다는 것은 당시만 해도 꿈만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자립은 세계 원자력 발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달성한 성과다. 선배 과학자들은 기술자립이 없이는 영원한 종속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해외에서 원자력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힘든 길이었지만 원자로 계통과 중수로 및 경수로 핵연료를 자력 설계하는 등 원자력 기술 국산화를 위해 수많은 과학기술자가 한마음으로 뭉쳤다. 특히 1980년대 원자로 기술 자립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며 "성공하지 못하면 태평양에 빠져 죽겠다"고 말할 정도로 과학자들의 사명감과 애국심은 남달랐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우리의 원자력 기술력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 2009년 UAE 원전 수출과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수출에 성공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글로벌 원자력 기업인 AREVA(프랑스), NUKEM(독일)-NIEKET(러시아) 컨소시엄을 제치고 네덜란드 연구용 원자로 개선사업을 수주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불과 50여 년 만에 원자력 기술 도입국에서 기술 독립국으로, 나아가 수출국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원자력은 새로운 꿈을 꿔야 할 때다. 글로벌 원자력 R&D 리더로서 원자력 현안을 해결하고 국가 신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 무엇보다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시급하다.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는 파이로프로세싱 기술과 이와 연계한 소듐냉각고속로의 개발이 중요한 이유다. 이를 통해 후손들에게 깨끗하고 지속가능한 미래원자력시스템을 물려줄 수 있다.
성장하고 있는 세계 연구로와 중소형 원전 분야의 시장을 선점하는 일도 중요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연구로는 240여 기다. 이 중 향후 20년 내 신규 및 노후화된 연구로의 대체수요는 30~50기로 추정되는 등 연구로 시장은 매우 유망하다. 중소형 원전 시장 또한 2050년까지 500기 이상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형 일체형 원전으로는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한 스마트(SMART) 수출에 주력해 세계 시장을 공략해 나가야 한다.
원전 노후화에 따라 확대되고 있는 원전해체시장에 대비해 원전제염해체 연구도 강화해야 한다. 방사선 등 원자력 비발전 분야에서 생명, 의학, 공업 등 여러 분야와의 융합 연구를 활성화하고, 연구소 기업의 설립과 중소기업 기술 지원을 확대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간 원자력이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과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먹거리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다시 한 번 국가 경제 성장의 견인차가 되어야 할 시점이다.
을미년 새해를 맞는 원자력의 꿈은 모든 국민과 함께 꾸는 꿈이어야 한다. 원자력의 출발점은 과학이었지만, 결승점은 국민의 마음이다. 대한민국 원자력의 꿈은 국민의 신뢰가 바탕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