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특히 자주 접하게 되는 의료기기 중 하나가 내시경입니다. 미뤄둔 건강검진에 여러 모임으로 인한 술자리가 늘면서 역류성 식도염이나 대장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직장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등장한 내시경은 '안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금속관으로 만들어졌던 초창기 내시경부터 5㎜ 크기의 초정밀 카메라를 장착한 현재의 모습까지 우리 몸 속을 탐험하는 내시경의 발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800년대 중반에 발명된 초창기 내시경의 모습
◇ 금속관에 거울 단 것이 시초= 내시경의 뿌리는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는 말이 주요 교통수단인 탓에 치질을 앓는 사람이 많았고, 이들의 항문 안쪽을 관찰해 불로 지져 치료하던 것이 내시경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 비디오 내시경 시제품
현대의 내시경은 독일의 의사 보치니가 손전등 같은 모양의 도광기를 제작해 이 금속관을 요도와 직장, 목에 넣고 램프의 빛으로 관찰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1853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기구에 처음으로 '내시경(Endoscope)'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1868년에는 독일 한 의사가 길이 47㎝의 금속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모든 내시경이 금속관으로 만들어져 몸속에 넣는 과정에 환자의 고통이 크고 장기를 찢는 등 사고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유럽이나 일본 일부 지역에 보급되는 데 머물렀습니다.
◇ 일본서 '위 카메라' 상용화= 19세기 말에는 부드러운 관으로 만든 '위 카메라(gastrocameras)' 아이디어가 등장합니다. 위 카메라 개발은 도쿄의 젊은 의사 우지 다츠로와 올림푸스의 카메라 기술자 스기우라 무츠오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위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우지 다츠로는 올림푸스와 함께 위장 내부를 촬영하는 소형 카메라를 제작했습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1949년 말 개에게 첫 시제품 실험을 한 이후, 1950년 9월 인간의 위를 카메라로 촬영하는 실험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위 카메라는 사진 촬영만 가능해 뱃속을 실시간으로 볼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후 올림푸스는 유리 섬유를 이용한 섬유 내시경을 개발해 위 내부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처치구와 같은 치료용 기구의 개발이 시작됐고, 이로써 진단과 동시에 치료도 가능해졌습니다.
최신 소화기 내시경 장치인 올림푸스 '루세라 엘리트' 올림푸스 제공
1980년대 후반에는 비디오 내시경도 개발돼 모니터로 검진화면을 공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02년에는 내시경에 세계 최초로 HDTV 고화질 디스플레이 시스템이 적용돼 더욱 정밀한 진단이 가능해졌습니다. 2006년에는 검진 부위에 파랑, 초록의 두 파장 대역을 가진 광선을 보내 혈관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NBI(Narrow Band Imaging, 협대역 화상 강화기술)' 기술이 적용돼 의사들이 작은 병변도 보다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됐습니다.
대장 내시경의 경우 구불구불한 대장벽에 닿으면 자연스럽게 휘어져 대장 진행 방향에 따라 부드럽게 내시경을 삽입할 수 있게 돼 시술 시간을 단축하고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고 있습니다. 이 밖에 최근에는 일반적인 내시경으로는 검진이 어려운 영역을 관찰하기 위해 소형 캡슐에 비디오카메라를 탑재한 '캡슐 내시경'도 개발돼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올림푸스 '위 카메라' 시제품
◇ 내시경으로 조기암 치료까지= 내시경으로 위 내부를 실시간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몸에 메스를 대지 않고 검진만으로도 조기암 치료가 가능해졌습니다. 올림푸스는 의사진과 공동으로 조기 위암이나 대장암 등의 병변을 절제하고 박리하는 EMR(Endoscopic Mucosal Resection , 내시경적 점막 절제술), ESD(Endoscopic Submucosal Dissection, 내시경적 점막하층 박리술) 등을 실용화했습니다.
올림푸스 의료사업본부 타마이 타케시 본부장은 "내시경의 발전에 따른 조기진단은 암 환자 치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위암 사망률이 꾸준히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나아가 내시경에 처치구를 삽입해 진단과 동시에 치료할 수 있게 되면서 몸에 메스를 대지 않고도 최소 침습 치료가 가능해 개복 수술과 달리 당일 퇴원도 가능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