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국립대 공과대학의 여교수 비율은 2.6% 불과 젠더 다양성 보장돼야 창의성-수월성 높아져 대학평가 젠더혁신 시급...별도 정원 배정 필요해
이혜숙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우리나라 공과대학의 여학생 비율은 2012년 입학생 기준으로 20%를 넘었다. 석 박사 과정에도 17.6%와 12.1% 비율로 여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공대에 여학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공과대학의 여교수 비율은 얼마나 될까? 2012년 전임교수 기준으로 5.1%에 불과하다. 예산을 전적으로 정부에 의존하는 국립대학의 경우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가 전국 11개 국립대학의 여교수 비율을 조사해 보았더니 공대 교수 2,372명 가운데 여교수는 62명으로 고작 2.6%였다. 충남대가 5.6%(11명)로 가장 높았고 서울대 3.6%(12명) 경북대 4.3%(12명) 인천대 3.2%(5명) 전북대 3.0%(7명)로 그럭저럭 여교수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제주대(2.3%, 2명) 강원대(0.4%, 1명) 충북대(1.9%, 3명) 전남대(1.7%, 4명) 부산대(1.7%, 5명)로 가면 여교수가 '희귀'하다. 특히 경상대 공과대학엔 여교수가 한 명도 없다. 공과대학의 여교수 비율로만 보면 우리나라의 젠더격차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여성이 공과대학에 많이 입학하고 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지만 교수로 임용되는 비율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얘기다.
최근 일부 공과대학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강성모 KAIST 총장은 얼마 전 여성과총 주최 학술대회 기조강연에서 "여교수가 하나도 없는 학과에 여교수 채용 시 우선권을 준 결과 2014년 신규채용에서 전체의 37%인 7명의 여교수를 채용했다"고 밝혔다. KAIST는 현재 8.7%인 여교수 비율을 2017년까지 10%를 올리겠다고 한다. 서울대 공대에 여교수가 12명까지 늘어난 것도 2003년부터 3년간 실시된 여교수 특별정원으로 2-3명 채용한 후에 자유경쟁을 통해서 채용된 결과라고 한다.
해외의 경우도 거저 젠더다양성이 생긴 것이 아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론다 시빙거 교수는 "대학이나 학과에 여교수 비율이 너무 낮으면 구성원들이 부끄럽게 생각해서 특별히 노력한다"며 "여학생 졸업생 중 우수한 인재는 전국 규모로 오랫동안 추적해서 채용한다"고 했다. 스웨덴의 대학들은 인사제도를 역순으로 바꾸어 먼저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선정한 3인을 학과에서 최종결정하는 방식으로 여교수 채용을 늘렸다고 한다. 서구 대학들에선 신임교원 채용인사위원회에 여성교수를 30% 이상 포함하는 것은 이미 보편화됐다.
이와같이 일부 대학들이 젠더다양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사회발전을 목표로 영역이 더 넓어진 과학기술이 젠더다양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10억 이상 3개 경제 집단으로 볼 때 여성은 중국과 인도를 합한 것보다 크다. 보스턴컨설팅 그룹은 2017년이 되면 세계적으로 여성소득은 15.6조 달러에 달해 중국과 인도의 GDP를 합한 것보다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커지면서 여성이 구매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경우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기술제품과 기술서비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성의 시각과 욕구를 반영한 기술개발과 서비스 제공이 필요해졌다. 유럽연합은 2013년에 발표한 연구혁신기본계획 Horizon 2020에서 '사회와 함께,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을 표방하고 4개의 중점과제 중에서 '과학기술에서 젠더평등'을 한 과제로 제시할 정도이다. 유럽에서는 젠더다양성이 연구팀과 연구기관의 창의성과 수월성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2002년에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5년마다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13년에 끝난 제2차 기본계획에서 공과대학 여학생 비율 25%를 목표로 정했으나, 현재 20% 수준으로 목표달성엔 실패했다. 그러나 KAIST 기계공학과의 경우 예전에는 여학생이 1~2명에 불과했으나, 여성인 박수경 교수가 부임한 후엔 10명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롤 (role)모델이 있어야 여학생들이 자신있게 그 분야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대학 캠퍼스의 젠더다양성은 교수의 젠더다양성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과학기술에 기반한 창조경제를 천명하면서 창의적 인재양성을 목표로 <공과대학혁신특별위원회>
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교수채용 및 평가시스템 개선을 제안하여 산업계 인사를 교수로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기업의 대학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수용해 전공강화와 융합교육 활성화, 현장역량 강화 등 대대적인 교과과정 개혁을 추진과제로 내놓았다. 여기서 핵심 추진전략을 '다양성'으로 삼은 것은 다양한 배경과 경험 그리고 사고가 창의성과 수월성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글로벌 인재와 젠더 다양성이 빠진 것은 아쉽다.
공과대학의 젠더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각종 통계에 젠더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고, 교수평가 및 대학평가에 젠더혁신 개념을 도입하여 정부 재정지원에 젠더다양성 달성 정도를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열악한 상황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정부가 국공립 공과대학에 일정 수의 여교수를 채용할 수 있게 별도 정원을 우선 배정해 줄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