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여덟 시. 오늘도 각 부분장들과 모여 어제의 회의 결과를 검토하고 이슈가 해결 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데이터베이스 이관과 관련되어 고객 쪽 협조사항이 벌써 일주일째 지체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병원 의사결정 회의에 올리도록 했지만, 혹여 이것 때문에 고객 쪽 담당 엔지니어가 불편을 겪을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오전 아홉 시.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테크니컬(technical) PMO 회의에서는 그 동안 가장 고민스러웠던 HL7 인터페이스 문제를 드디어 해결했다는 보고를 하고 서로 기분좋게 회의를 마칠 수 있었다.
국제표준 규약인 HL7 인터페이스에 대한 국내에서의 인식이 워낙 없다보니 그나마 의료정보교류 사업 때 경험이 있었던 개발자들로 팀을 꾸렸지만 업무 범위가 너무 넓어 고생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번에 내부 역량도 커지고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다행스러운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을 하면서 체중이 15Kg이나 줄어든 담당 부분장을 보면 안쓰러웠는데 오늘은 삼겹살에 소주는 못먹지만 뭐라도 먹이면서 수고했다는 말이라도 해줘야겠다.
오전 열한시. 갑작스럽게 약제부에서 미팅을 요청해왔다. 부서 추가 요구사항이 있다며 해결해주지 않으면 검수 사인을 할 수 없다는 요청.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너무 큰 요구사항이라 계약사항에 없는 부분이라는 설명과 함께 일 주전에 거절하는 답변을 보냈는데 부서 총책임자가 직접 찾아왔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결국 두 시간 넘게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일부 현실적으로 수용가능한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로 하고, 대신 검수 조건에서는 제외하는 정도로 합의를 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다국어 지원 기능을 구현해 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다들 반대하던 다국어 버전 구현에 힘을 보태주셨던 병원 집행부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한 순간이다. 일주일에 수십 개의 이런 추가 요구 사항들이 들어오지만 어쩌겠는가, 우리가 을인데. 그래도 의료인의 관점에서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요구사항을 최선을 다해 들어주고자 하는 진심이 통했는지, 요즘은 요구 사항 조정하는데 이전보다는 확실히 수월해진 것 같다.
하지만 역시 고객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우리가 얻을 것을 얻어내야 하는 회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다.
예정에 없던 미팅 탓에 피곤했지만, 오후 두시 오늘 가장 중요한 회의인 고객 쪽 CIO와의 내년도 추가 사업 계약에 대한 업무 범위 협의 미팅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 팀이 보여준 업무 능력이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호의적인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약과 관련된 회의다 보니 양쪽에 팽팽한 긴장이 없을 수는 없었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회의 동안 우리가 제안한 과업 범위를 서로 한줄한줄 검토하고, 수 많은 질문이 오고 간 후에야 간신히 서로 추가 사업에 대한 과업 범위에 합의할 수 있었다.
온 몸에 긴장이 풀렸지만, 방심은 금물. 다음 주에는 같은 내용으로 CIO가 동석한 가운데 계약 담당자와 금액에 대한 회의를 해야하고, 그 다음에는 고객 측 CEO에게 발표를 해야지만 최종 계약 내용과 금액이 확정된다.
저녁 일곱시 오늘의 마지막 미팅인 개발 사항 점검 시연. 몇 일전에 부탁했던 처방 화면 수정사항이 지난번 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미진해 보인다. 사용자 관점에서 프로세스를 다시 숙지시키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를 하다보니 어느덧 시계는 아홉시. 매일 매일 같은 듯 다른 회의에 지칠 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진심으로 고객을 대하는 회의 하나하나가 모여 지금의 현지 버전이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뿌듯하기도 하다.
퇴근길에 보니 사우디의 상징인 초승달이 하늘에 걸려있다. 용감하게 시작한 해외사업인데 갑자기 병원 식구들, 가족들, 환자들이 그리워 잠시 멍하게 된다.
수십 년전 이곳에서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지었던 우리나라 수출 인력들의 성실함이 지금도 이곳에서 회자되는데, 수십 년 후 우리도 그렇게 좋은 친구로 기억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램 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일 일정을 생각하니 또 아득해진다.
지금은 다른 생각 말고 마주한 일에 최선을 다하자 생각하며 잠을 청하려다 문득 생각이 났다.
다음 주가 누이의 생일이구나, 전화라도 해야겠다.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의료보험센터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