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을 나는 하얀 종이비행기. 이 장면이 만들어내는 연상은 '자유'다. 바람에 몸을 맡겨 자유롭게 날고 싶은. 그러나 무한한 꿈을 담아 하늘에 날렸던 종이비행기는 곳곳에 거미줄처럼 얽힌 책임과 감시망에 걸려 어딘지 모를 곳으로 추락했다. 마음으로 갈망만 하는 자유,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No Place to Hide).
지난 9일(현지시간) BBC는 '한국인들이 국내 최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떠나는 이유'라는 기사에서 "대화 앱 사용자들이 기존의 SNS(카카오톡)를 떠나 대체재로 집단 망명하고 있다"며 "독일의 메신저서비스 텔레그램에 지난 일주일 사이 150만 명의 한국인 사용자들이 새로 가입했다"고 보도했다. BBC는 "한국인 사용자들의 대거 망명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을 대화 앱에서 퍼뜨리는 사람들을 고소하겠다는 방침이 알려진 이후"라고 덧붙였다.
이를 반영하듯 텔레그램은 최근 몇 주 동안 구글플레이 안드로이드 무료 앱 부문에서 탑5 밖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텔레그램의 인기 급상승의 배경에 한국인들의 '사이버망명'이 작용한 셈이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최대 SNS '브콘탁테'를 설립한 파벨 두로프가 만든 무료 메신저다. 파벨 두로프는 지난 4월 브콘탁테가 보유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대의 개인정보를 넘기라는 러시아 정부의 요구를 거절하고, 독일로 망명했다. 1984년생,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열혈 청년'은 정부기관의 감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소통수단을 위해 텔레그램을 개발했다. 텔레그램은 대화내용이 암호화되는 등 보안을 강화했고, 이용자 개인정보 보호를 우선시했다. 텔레그램 앱이 하늘색 바탕에 하얀 종이비행기인 이유도 이런 철학에서 비롯된다.
일주일 사이 150만명이 사이버 망명했다는 사실도 그리 충격적이진 않다. 새로운 서비스에 열광하다가도 금방 식는 게 디지털 세상에서 이용자들의 행태다. 망명은 지금 당장 구속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지 모르나, 새로운 망명지에서 얼마나 큰 자유를 얻을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지난 5월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2013년 NSA 기밀 폭로 내용은 정보기관의 정부수집에 대한 탐욕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탐사 저널리스트 글렌 그린월드가 스노든의 폭로내용을 담아 펴낸 책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지금 디지털 세상을 사는 전 세계인들이 무방비로 감시에 노출된 현실을 담고 있다.
'사이버 망명'은 자유를 줄까. 국내 서버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감시활동을 잠시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망명의 순간, 해외 정부의 감시활동 범위에 들어가게 된다. 스노든에 따르면 정보기관의 의지에 따라 그 어떤 개인적인 사항도 무작위로, 모두, 철저하게 볼 수 있다. 네이버와 다음의 메일을 피해 구글 지메일로 간다면, 결국 자신의 모든 정보 혹은 기업의 기밀사항, 또 어떤 국가 비밀정보 모두가 구글 서버에 기록된다. 그들이 보려 한다면, 고스란히 발가벗겨진다.
재해, 재난, 광범위한 테러, 전쟁의 공포 시대에서 국가기관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감시활동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합법적이어야 한다. 늘 문제가 되는 것은 불법적인 도청과 필요 이상의 감시, 정보 접근 능력을 가진 자들의 파괴적 정보수집 활동이다.
카카오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이 요구하면 자료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의 합법적 요구를 민간 사업자가 거부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면 파벨 두로프처럼 카카오 CEO도 어딘가로 망명해야 하니까.
카톡은 대한민국이 강력한 통신인프라를 기반으로 인터넷 분야에서 창조해낸 몇 개 안되는 '창조경제'의 소산물이다. 여전히 국내서비스라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지만, 카톡의 성공을 보면서 네이버는 동종 서비스인 '라인'을 일본에서 성공 시켰고 세계시장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이들 SNS를 타고 우리 게임업체를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사업자들이 시장을 갖고 세계로 뻗어 간다.
대한민국이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한 창의적 사업모델이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가지 못하고 내수시장에 머물다 사라진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도 비슷한 서비스를 뒤늦게 들고 나온 해외 사업자들에게 송두리째 말이다. 독자적인 한국형 무선인터넷 플랫폼 '위피'는 스마트폰 열풍 속에 종적도 없이 사라졌고, 싸이월드의 창의성은 글로벌 네트워크의 힘을 내세운 페이스북에 가려졌다. 이제 모바일시대, 최근 2~3년 사이 가장 돋보인 창의적 인터넷 사업모델 토종 모바일 메신저서비스의 운명이 느닷없는 '감시' 이슈로 위태롭다.
임윤규 IT정보화부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