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본연 업무' 한해 허용에 전화업무 많은 현장서 혼선
주민번호 수집과 활용을 대폭 금지한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의 다음 달 7일 시행을 앞두고 금융권이 관련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일부 모호한 표현이 있어 일선 현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대면 접촉 영업이 많은 은행과 보험권에 비해 전화 업무가 많은 카드사의 경우 기존 주민번호 활용 관행을 어떻게 재정비할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본지가 8개 신용카드사의 개인정보보호법 대응 상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카드사들은 주민번호 사용 금지에 대비해 내외부적으로 다양한 회의를 개최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일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법령 표현을 두고 명확한 내부 지침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이다.

실제 정부는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의 시행을 앞두고 지난 14일 입법 예고한 신용정보법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 본연의 업무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는 주민번호, 여권번호, 운전면허번호 등 고유식별번호를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 여신전문금융법 일부 개정을 통해 신용카드 부정사용 피해 예방, 모집인 등록 취소, 모집질서 유지 등의 사무에서는 주민번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금융 본연의 업무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카드업계의 지적이다. 예를 들어 카드사 고객이 업무 처리를 위해 콜센터에 전화하는 경우 현재까지는 본인 확인을 위해 주민번호를 누르게 하거나 구두로 주민번호를 받은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데 이것이 금융 본연의 업무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A카드사 관계자는 "기존 주민번호를 활용해 보안인증을 하던 업무를 대상으로 휴대폰과 생년월일로 대체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지만 어디까지가 금융 본연의 업무인지 스스로 구분할 수 없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B카드사 관계자 역시 "각 업무별로 주민번호 수집 및 이용현황을 조사해 법령에 근거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조사해 법령근거가 없다고 판단되는 업무는 주민번호 식별 대신 생년월일이나 휴대폰번호 등으로 대체수단을 마련하자는 내부 정책이지만 아직까지도 명확한 업무 구분을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여신협회와 카드사들은 지난 14일에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금융 본연의 업무에 대한 뚜렷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나 안행부 역시 관련 문제에 대해 뒷짐을 진 상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애초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할 때 세부적인 조사 없이 성급하게 법안을 제정하고 시행해 이런 문제가 초래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법 시행 이전에 주민번호가 어느 산업군의 어떤 영역에서 요구되는지 정확한 전수조사를 실시한 후 필요한 곳과 아닌 곳을 나눈 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업계에 지시했어야 했다"며 "이번 개정안 실시 이후 역시 각종 문제가 발생하면서 또 개인정보법에 개정에 개정을 거듭하는 '누더기 개정안'으로 법안 시행 자체가 계속 신뢰를 잃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금융권의 한 고위임원은 "금융업무는 돈이 오가는 매우 민감한 영역이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 못지 않게 개인에 대한 명확한 사전 인증이 필수"라며 "정부에서 명확한 기준을 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규기자 dk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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